부처님, 저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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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저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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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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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窓
▲ 서가숙 작가

[경북도민일보]

“옆으로 조금만 비켜주세요.”
스님의 법문이 있는 날에는 신도들이 저마다 좀 일찍 와서 맨 앞에 앉으려고 서두릅니다.
평소 게으른 나도 법문이 있을 때면 맨 앞에 앉아
“저 왔습니다. 잘 봐 주세요.”
마음속으로 되 뇌이며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해서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어느 날, 늦게 오신 할머니 여러 분이 일명 자신의 자리.
즉, 평소에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가려고 새치기를 해서 나는 자꾸만 조금씩 뒤로 밀렸습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려고 목욕하고 새 옷 입고 와서 좋은 기분으로 좋은 말씀 들으려고 했는데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절에는 커다란 기둥이 여러 개 있습니다.
너무 커서 앞이 가려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내 자리에는 커다란 기둥이 보일뿐이었습니다.
“안 보여. 아무것도.”

스님을 보면서 법문을 들으려고 고개를 쑥 내밀었습니다.
두 다리는 기둥 뒤에 있고, 머리는 사람들 틈에 섞이는데 성공했습니다.
“뭐 하십니까?”
“아, 네. 제가 처음에 저 맨 앞에 앉았는데 자꾸 밀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스님께서 법문을 가르쳐주시는데 안 보여요.”
조금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하자
“귀로 들으면 되지요.”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감동을 받지요.”
“보살님, 머리로 보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보세요.
부처님은 다 보입니다.
보살님이 기둥 뒤에 있어도 부처님은 다 보고 계시니 자리 옮기지 마시고 편안하게 앉아서 들으세요.
눈으로 보려고 애쓰지 마시고 마음, 마음으로 보세요.”
할머니 보살님 말씀에 부끄러웠습니다.
언제나 맨 앞에서 강의 들으려하고 맨 앞에 앉아서 배우려했는데 그 후부터 절에 가는 날이면 좋은 자리보다 남들이 기피하는 큰 기둥 뒤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부처님, 저 보입니까?
명당자리에 앉았는데 예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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