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인의 노래, 낙동강 물줄기 따라 흐른다
  • 이경관기자
구상 시인의 노래, 낙동강 물줄기 따라 흐른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7.0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학관 순례-3. 칠곡 구상문학관
▲ 구상문학관은 경북 칠곡 왜관읍에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따라 시인의 시가 흐르는 듯하다. 사진 위부터 구상문학관 전경과 관수재 전경, 관람객들의 관람 모습.

 

▲ 구상과 아내 서영옥.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들은 그 자체로 한권의 특별한 책이다.
경북·대구에는 작가들의 삶과 문학적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문학관이 여럿 있다. 삶의 지혜를 찾아 지역 곳곳에 자리 잡은 문학관을 둘러보자.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오늘’ 전문)
 전쟁의 비극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모든건 자연의 이치대로 되돌아 간다고 했던 시인 구상.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에 선정되기도 했던 시인이었으며 정론직필의 언론인이었고, 학자였던 그는 낙동강 따라 오롯이 詩 하나 새겨 품고 영원을 살아가고 있다.
 ‘구상문학관’.
 문학관은 옛 왜관 나루터 앞 낙동강을 곁에 두고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5-84에 자리하고 있다.
 대구 공단역에서 북부-왜관 버스 승차 후, 왜관남부버스정류장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버스여행 끝에 한국전쟁의 아픔을 자연친화적 감성으로 노래한 구상의 문학을 만날 수 있다.
 구상 문학관은 세계 200대 문인 반열에 오른 구상 선생의 선양과 한국시문학에 끼친 업적을 보존하고 시인의 삶과 문학과 구도자적 정신세계를 영원히 이어가고자 2002년 건립됐다.
 2013년 5~9월까지 5개월 동안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관람객들이 구상의 문학세계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 구도자이자 문학가였던 구상-생애
 구상은 3·1운동이 일어났던 해인 1919년 9월 서울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집에서 지어준 이름은 원래 구상준이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집에서 “상아, 상아” 부르다보니 결국 ‘상’이라는 외자 이름으로 굳어지게 됐다.
 그가 네살 때 그의 가족은 부친이 베네딕트 수도원의 교육 사업을 맡으면서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리로 이사했다.
 열다섯에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환속했다.
 일반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퇴학당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종교과에 진학했다.
 1941년 졸업 후 귀국한 그는 원산에서 만난 여의사 서영옥과 결혼했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집 ‘응향’에 실린 그의 시 ‘여명도’, ‘길’ 등이 규탄 받자 1947년 2월 월남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구상은 국방부 기관지인 승리일보를 만들며 종군했다.
 그는 1953년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왜관으로 내려가 1974년까지 기거하며 작품 활동과 후학 양성에 매달렸다.
 그곳에서 그의 연작시 ‘밭 일기’ 100편과 ‘강’ 60여 편이 탄생됐다.
 특히 아내 서영옥이 그를 위해 지은 관수재는 화가 이중섭, 시인 오상순, 아동문학가 마해송, 걸레 스님 중광, 운보 김기창 화백 등 평생 아웃사이더라 불리던 기인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구상 시인은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된 데다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힘들게 병마와 싸우다가 끝내 2004년 5월 11일 하늘로 떠났다.
 
 △ 그리스도 폴의 모습으로 살아간 구상-문학세계
 “땅이 꺼지는 이 요란속에서도/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귀 기우리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헛개비와 무지개가/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닥아오는 불장마 속에서/‘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모양 스러져가는/어린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초토의 시 12’ 전문)
 구상 시인은 프랑스문인협회가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는 등 우리나라의 현대 시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기독교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미의식을 추구했으며 전통사상과 선불교적 명상 및 노장사상까지 포괄해 인간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 폴이라는 가톨릭 성인의 설화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접한 뒤 강을 회심의 수도장으로 삼았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왜관은 구상 시인에게 시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었으며 젖줄이었다.
 그는 또 시적 기교와 이미지에 주력하기보다는 풍부한 의미와 암시를 자아내는 평범한 시어를 택해 존재와 현상에 대한 의식을 형이상학적으로 담아내는 점도 그의 문학적 특징이다.
 대표작으로 1956년에 발표한 연작시 ‘초토의 시’가 있다.
 6·25전쟁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전쟁의 고통을 초월해 구원의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견고한 시어로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작시 ‘강’, ‘모과옹두리에도 사연이’, ‘초토의 시’, ‘시집 구상’, ‘그리스도 폴의 강’, ‘타버린 땅’, ‘유치찬란’, ‘밭과 강’,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등 10여권이 넘는 시집과 수상집, 수필집 등을 펴냈다.
 팔순에 다다른 시기에도 시집 ‘인류의 맹점’을 발표해 문학에 대한 열정과 정갈한 노시인의 깊이를 보여줬다.
 구상 시인의 작품은 일찍부터 불어와 영어, 독어,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돼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 영원을 사는 구상-구상문학관
 구상문학관은 낙동강을 바라보고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도폴의 江’의 시가 쓰여진 비석을 지나 문학관에 들어서면 구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문학관은 중정을 가진 ‘ㄷ’자 모양으로 부지 면적 1611㎡, 건물 연면적 699.87㎡ 규모의 2층이다.
 중정에 서면 작은 낙동강을 닮은 수로가 흐른다.
 작은 강에 감싸인채 시인의 서재 ‘관수재(觀水齋)’를 마주한다.
 특히 이곳은 그와 절친했던 화가 이중섭, 시인 오상순, 아동문학가 마해송, 걸레 스님 중광, 운보 김기창 화백 등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1층 전시실에는 문단 활동 당시 시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와 문우와 주고 받았던 편지, 서화 등이 전시돼 있다.
 길게 나열된 구상의 연보에는 탄생, 고난, 사건, 고통과 기쁨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와 전쟁, 분단 등 우리의 곡절 많은 근대사가 얽혀있다.
 영어와 일어, 불어, 독어 등 외국어로 번역된 그의 시집부터 그가 즐겨 썼던 모자와 묵주, 안경, 돋보기, 만년필 등도 전시돼 있다.
 전시실 한 켠에는 그의 아내와 아이, 문우들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곁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중광 스님이 그린 시인의 얼굴과 화가 이중섭이 그린 ‘K씨의 가족’이 있다.
 시인 노천명, 소설가 박종화, 화가 이중섭 등 수많은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도 전시돼 있다.
 2층에는 도서관, 열람실, 사랑방이 있다.
 사랑방에서는 칠곡문인협회의 모임이나 지역 문학동인들의 공부가 진행된다.
 도서관에는 구상 시인과 지인들이 기증한 2만7000여 권의 책이 소장돼 있다.
 특히 저자의 서명이 담긴 책은 6000권이 넘는다.
 이곳은 저자의 서명본을 가장 많이 보유한 문학관이기도 하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구상 시인의 일생은 진리의 모색이고 그의 시는 그 길을 따라간 발자취의 기록”이라며 “그는 떠났지만 그의 시는 이곳에서 오늘도 삶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구상문학관을 찾아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구상의 삶과 문학은 오늘도 낙동강의 물결 따라 흘러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