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가 잘 할게 죽을 때까지 잘 할게”
  • 경북도민일보
“여보, 내가 잘 할게 죽을 때까지 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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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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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窓
▲ 서가숙 작가

[경북도민일보] 내 사랑 정분이

니 편, 내 편이 갈라져서 부모님의 마음은 불편했어.
“미워도 고와도 다 내 자식이다. 딸도 아들도 손자도 다 내 핏줄이고. 내 마음을 너는 알거다. 자식을 키우고 있으니.”
시어머니의 속마음은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싶어 하셨어.
시부모님의 마음은 알지만 서운했어.
지금까지의 고생이 허무했고 모두가 야속했어.
돈을 바라는 적은 없었지만 돈 앞에 모두의 양심은 병이 들었어.
시부모 모시고 시누이들과 시동생들 잘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고 자식 다 키우고 나서 이제야 좀 쉬는 가 했더니 그 모든 사람들과 원수가 되어야 하다니 기가 막혔어.
어깨가 아파서 두 팔을 위로 올리지 못해도 파스 한 장이면 다음날 또 일하러 다녔는데,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심 가졌는데 허무했어.
형제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거짓말투성이의 오해가 생긴 게 다 황금 땅이 문제였어.
정분은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황금 땅을 억지로라도 갖고 싶었어.
‘땅을 팔면 나는 며느리이고 내 아들은 장손이니까 반은 우리 것이야. 하지만,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이 자식이라는 핏줄을 먼저 앞세운다면? 고마움을 모르는 그들이 과연 나누려고 할까?’
정분은 이런저런 생각에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어.
핸드폰이 자꾸 울렸어.
막내 시동생 전화번호가 떴어.
짜증이 났어.
자신이 아들처럼 키우고 학교에 가면 엄마라고 부르던 시동생이었어.
결혼을 시켰는데도 전화 한 번 없다가 황금 땅이 탐나서인지 옛날 일을 들먹이며 형수는 엄마나 다름없다고 투정부렸어.
아들은 월급타면 용돈도 보내오고 치과 병원비도 줬지만 시동생과 시누이들은 얌체처럼 정분이 손에 있는 것을 가져가기만 하고 선물 하나 없이 말로만 늘 고맙다고 했어.
고마움을 모르는 욕심이 많은 시댁 식구들이 미워졌어.
신경을 많이 써서인지 최근에 와서 몸이 아픈 날이 자주 생겼어.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서 병원에 간 정분은 긴장이 되었어.
“사진 찍어보니 움직이는 병원입니다. 무릎관절이 많이 닳아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여기 가슴은 기침이 심해서 뼈에 금이 가서 가슴이 아픈 겁니다. 일을 하지 마시고 입원하셔서 수술을 받으시지요.”
정분은 설마 했지만 의사의 진단에 담담했어.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온 정분은 남편에게 얘기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어.
안 봐도 시동생의 전화였어.
자신은 안 먹고 안 입고 아껴서 그 돈으로 그들을 결혼시켜 주었는데 아무도 정분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어.
짜증이 나고 화가 났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한참동안 통화를 마친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살폈어.
“당신에게 시집와서 고생만 했는데 내게 황금 땅을 주세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너무 놀라서 쳐다보기만 했어.
“땅을 안주면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이 집에 시집와서 고생한 거 당신이 증인이잖아요. 그냥 저 주세요. 처음부터 제 것이라고 했어요.”
“내 명의로 되어 있어도 부모님 재산이야. 형제들과 나눠야지.”
“내가 힘들게 고생해서 농사지었다고요.”
남편은 맏이라는 이유를 내 세워 나눠야 된다고 했어.
서운함이 배신감으로 바뀌었어.
“삼십년 넘게 시부모님에게 따뜻한 밥을 드렸지만, 친정 엄마에겐 효도 한 번 못 했어요. 엄마 연세가 구십이 넘어서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분이라고요. 그게 얼마나 가슴에 못 박히는지 알아요? 당신 엄마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사셨지만, 우리 엄마는 너무 힘들게 사셔서 나를 기억도 못해요. 나를 낳아준 엄마의 자식인데도 나는 시댁 식구들 위해서만 살았다고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고생했던 게 이제는 원망으로 돌아왔고요. 고생만 했던 내가 보상 받는 게 그렇게 싫어요?”
“갑자기 왜 그래?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잘해준 거 고맙게 생각해. 그렇지만 땅은 명의만 내거야.”

“그 땅에 농사짓고 돈 벌어서 시누이 시동생 결혼 다 시켰어요. 나는 하인처럼 일만했고 남은 건 병 뿐이에요.”
울컥대는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어. 남편은 어쩔 수 없는, 부모님의 맏아들이었어.
“아들아, 휴가 좀 낼 수 있니?”
정분은 아들에게 전화해서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어.
“너의 아빠에겐 절대 말 하지 마.”
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어.
“엄마, 내가 효도할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아들이 남편보다 더 믿음직스러웠어.
보름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
아들이 아빠에게 전화했나 봐.
저녁에 남편이 피곤한 모습으로 왔어.
“장모님이 돌아가셨어.”
“언제 돌아가셨는데요?”
“당신 수술 하던 날. 장례는 내가 알아서 다 했어.”
정분은 울고 또 울었어.
돌아가신 엄마가 불쌍해서 울다가 효도 한 번 못해서 미안해서 울다가 고생만하고 살아온 자신이 서러워서 울었어.
남편은 황금 땅을 시세보다 아주 싸게 다 팔았어.
세금을 떼고도 거액의 돈이 옥님이 통장에 들어왔지.
“처음부터 이 돈은 당신 것이야.”
남편의 말에 시부모님은 아무 말도 안했어.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이 부리나케 집에 찾아왔어.
너무 시끄러웠어. 정분을 죄인 취급했어.
한이 맺혔다는 말과 눈물과 원망이 가득했어.
동생들에게 언제나 다정했던 남편이 종이봉투를 꺼냈어.
“누구든지 이제부터 부모님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 이 집을 줄 거야. 돈만 있으면 효도하고 싶다고 했지? 이 집에 들어와 살던지 아니면 이 집을 팔아서 부모님 모시고 살아.”
남편이 처음으로 단호하게 말했어.
“형수, 이사 가요?”
“네 형수, 우리 집에 시집와서 할 만큼 했어.
모두가 알다시피 30년이 넘도록 고생만하고 살았어.
이제부터 우리 둘이 나가서 살기로 했다.
우리는 갈 테니 부모님께 효도하며 잘 살아라.”
“약속하나 하지요. 누구든지 부모님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  10년 후에 내 재산의 반을 드리지요. 모두 부모님의 자식들이니까 효도하고 싶으면 마음껏 하세요. 평소에 늘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믿고 갑니다.”
차 문을 열고 네비게이션을 켰어.
그리고는 큰아들이 사는 울진을 눌렀어.
차안에는 이미 커다란 가방이 여러 개 있었어.
“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출발한다고 전화할게요.”
“이제부터 내가 잘 할게. 죽을 때 까지 잘 할게.
내 사랑 정분씨. 이제 출발합니다.”
정분은 반가워할 아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었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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