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초월해 감동 주는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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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초월해 감동 주는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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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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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음악 공연장에서 자기도 모르게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음악이 직업인 필자도 음악 감상 때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가끔 깜빡 졸때도 있다.
 정확히 226년전 영국에서 하이든은 자신의 공연장에서 자주 조는 런던의 귀부인과 귀족들을 놀라게 하여 잠을 깨울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제94번 ‘놀람’(Surprise Symphony)이다.
 이런 작품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음악 공연장에서 밀려오는 졸음은 참지 못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놀람교향곡은 일명 북치기(독일어-Paukenschlag)라는 이름도 붙어있는 교향곡이다.
 1791년에 쓴 작품으로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진 고전적 교향곡의 걸작 중에 걸작이다.
 이 곡에 놀람교향곡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제2장에서 주제(놀람의 표현)를 피아노~피아니시모(p~pp:여리게~아주 여리게)로 조용히 연주하다가 갑자기 팀파니(음정을 표현하는 큰북)가 포르테시모(ff:가장 강하게)의 소리를 강하게 내어 연주하기 때문이다.
 하이든이 ‘새로운 것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진실이 뭐든 ‘놀람’ 교향곡을 지금 당장 여러분들이 감상한다면 그 신선한 감동은 시대를 초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놀람이라는 주제는 하이든이 스스로 제목을 만들었을까?
 100곡이 넘는 교향곡, 80곡이 넘는 현악4중주 작품들을 보면 모두가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이든이 그 모든 작품에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이든은 ‘절대음악’의 신봉자였다.
 음악 스스로의 독자적인 ‘형식’과 ‘질서’가 가장 중요하기에 다른 분야의 힘을 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당시 하이든뿐만 아니라 고전시대 작곡자(베토벤, 모차르트, 등) 들은 작품에 불필요한 부제를 붙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이든의 곡들에 붙여진 곡명은 공연장에서 감상한 느낌대로 청중들이 이름을 붙여주었다.
 예를 들어 하이든 작품에 놀람, 고별, 아침, 낮, 군대, 시계, 종달새 등 수백 곡의 작품 제목은 그의 작품을 대중들이 감상하고 느낀 점을 제목으로 표현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제목들이 유효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은 성품 또한 상냥, 친절, 정직, 근면하여 비엔나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파파 하이든’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집 밖에서의 성공이 정작 본인의 결혼생활에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하이든 부부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3살 연상인 가발 제조업자의 첫째딸 ‘마리아’와 28살에 결혼했는데 정작 하이든이 사랑한 여인은 처제인 ‘테레제’였다.
 하이든과 ‘테레제’는 수년 동안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지만, 종교적 신앙심 때문에 ‘테레제’의 부모님은 ‘테레제’를 수녀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 하이든은 ‘테레제’ 부모님들의 강요로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테레제’의 언니 ‘마리아’와 결혼을 하게 됐다.
 하이든은 결혼 이 후 ‘마리아’의 동생 ‘테레제’를 잊지 못했고 그녀를 위해 1756년 ‘살베레지나’를 작곡하여 헌정했고, 테레제의 수녀원 허원식 때도 참가하여 ‘C장조 오르간 협주곡’을 작곡하여 그녀에게 받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마리아는 동생과 달리 하이든의 아내는 박색인데다 허영심과 낭비벽, 잔소리가 많고 신경질적이었다.
 또한 하이든이 밤새 작곡한 작품 공책을 냄비받침으로 쓸 만큼 몰지각하고 무식했다. 이런 아내를 지칭해 하이든은 ‘지옥의 짐승’이라고도 표현했다.

 하이든이 다른 여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아내는 질투심으로 사나운 짐승이 되었다.
 더군다나 아이도 못 낳는 여인이었기에 하이든이 “내 처는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다른 여성들의 매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박색의 낭비벽과 허영심이 가득한 아내를 두고 하이든이 외도를 하여도 주위에서 아무도 말리거나 아내에게 귀띔하지 않았다.
 하이든이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 ‘에스테르하지 궁’에서 궁정악장으로 일하면서 18살이나 적었던 여자가수 메조소프라노 ‘루이지아 폴첼리’와 사랑에 빠졌다.
 ‘루이지아’는 매력적인 얼굴과 곱고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으로 전해진다.
 지옥 같은 아내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했던 하이든은 ‘루이지아’로부터 위로와 평안을 얻었고, 유부녀였던 ‘루이지아’도 ‘하이든’으로부터 위로와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둘의 관계는 부적절 한 관계에서 시작 되었지만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회법에서는 이혼이 금지되어 있었고, 결국 하이든의 부부 관계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루이지아’는 미망인이었고 ‘하이든’은 하루라도 빨리 아내가 죽어 지금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길 소망했다.
 요즘도 그러하지만 보통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을 하면  오순도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삶이지만 그 옛날 천재들의 삶은 오늘날처럼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애초부터 걸맞지 않는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랑 따로 결혼 따로 자식 없이 평생 음악일 만 해온 하이든은 어쩌면 음악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음악가였을 수도 있다.
 1809년에 하이든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루고 하이든 가문 묘에 안장시킨다.
 그런데 하이든 사후 11년 후 하이든의 무덤이 파헤쳐져, 그의 머리가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는데 오스트리아 귀족 중 1명이 하이든의 뇌를 연구하고 싶어 유태인인 ‘피터’와 ‘로젠바움’이라는 사람에게 사주하였던 것이다.
 사주 받은 피터와 로젠바움은 더욱 큰돈을 벌기위해  하이든 머리를 더욱 비싼 값에 팔기위해 다른 노인의 시체의 머리를 무덤에서 꺼내 귀족에게 바꿔치기해서 넘겨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비싼 값에 하이든의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겨버렸다.
 나중에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 귀족은 그들을 즉시 붙잡아 조사했으나 이미 하이든의 머리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팔려갔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찾으려하였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이후 100여년이 넘도록 하이든의 머리는 유럽전역에 은밀히 거래되는 수모를 겪었고 그러다 노력 끝에 하이든의 머리를 찾는데 성공하게 된다.
 하이든의 후손들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반환소송을 청구하였지만 그 유해의 최종 주인은 소송반환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되찾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에 유해반환 소송은 잠정 중단된다.
 그 후 1954년 6월 마침내 유해반환 소송에 승소하여 하이든의 머리는 조국의 품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는데 무덤이 파헤쳐져서 머리가 도난 된지 무려 145년만의 일이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 및 정치인, 오스트리아 국민 수십만 명이 함께한 미사는 이제야 하이든의 머리를 찾은 것에 대한 하이든 후손들에게 사죄와 영원한 영면을 바라는 마음으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21세기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하이든의 작품들이 작곡된 그 배경에는 이렇듯 하이든의 처절한 고통과 애환이 있다.
 죽어서도 영면에 들지 못하고 그의 머리가 도난당하는 개인적 통한의 삶을 목격하면서, 인류는 하이든에게 갚지 못한 빚이 크다고 하겠다.
 흙수저로 태어나 머슴 같은 유년기, 거지같은 청년기를 거쳐 결혼 후에도 악처로부터 모진 고통을 당해야 했던 하이든이 진정으로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은 오로지 음악 활동뿐이었을 것이다.
 지옥 같은 일생생활의 역경을 이겨내고 인류 역사에 위대한 교향곡의 아버지로 성장한 하이든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음악이 주는 메가톤급 힐링의 힘’을 목격하게 된다.
 험난한 삶 속에서 오로지 작곡을 통해 힐링을 얻었던 하이든!
 그렇게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시켰던 하이든의 교향곡과 소나타 한곡 한곡에는 모든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필자도 어려움에 직면할 때면 하이든의 곡을 들으며 역경을 돌파하는 내공을 키운다.
 바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하이든의 곡을 들으며 ‘성공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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