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권정생, 외로운 세상에 희망의 씨앗 뿌리다
  • 이경관기자
아동문학가 권정생, 외로운 세상에 희망의 씨앗 뿌리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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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순례-5. 안동 권정생동화나라
▲ 안동 ‘권정생 동화나라’ 전경.
▲ 지난해 테마문학기행으로 권쟁생 동화나라를 찾았던 포항시립도서관 관계자들.

 

▲ 권정생(1937. 09. 10.~2007. 05. 17.)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들은 그 자체로 한권의 특별한 책이다.
경북·대구에는 작가들의 삶과 문학적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문학관이 여럿 있다.
삶의 지혜를 찾아 지역 곳곳에 자리 잡은 문학관을 둘러보자.


 “가난한 삶이란 곧 떳떳한 삶일 것입니다. 항시 남의 겉치장만 따라가다 보면 사람 구실 절대 못 합니다. 민주주의도 가난한 삶에서 시작되고, 종교도 예술도 운동도 가난하지 않고는 말짱 거짓거리밖에 안 됩니다. (…)결국 정신적 힘 외의 모든 힘이 이 세상에서 추방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산문집 ‘빌뱅이언덕’ 중 ‘다시 김 목사님께 1’에서)
 “백번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가난할 것이며 가난한 아이와 함께 할 것”이라 했던 아동문학가 권정생. 그가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고 있다.
 권정생이 살았던 빌뱅이 언덕 아래 작은 흙집을 지나 차로 10분정도 달리다보면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오롯이 품은 동화나라를 만날 수 있다.
 ‘권정생 동화나라’.
 그곳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맑은 목소리로 인간다운 삶을 노래했던 작가 권정생의 혼이 살아있다.
 
 △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권정생의 생애’
 권정생은 1937년 8월 18일 일본에서 태어났다.
 거리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주어온 쓰레기더미 속에서 ‘이솝이야기’,  ‘그림동화집’,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등을 읽으면서 혼자 글을 익혔다.
 토오꾜오 시부야 혼마찌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해 8개월을 다녔고 광복 후 귀국했다.
 안동에서 일직국민학교를 졸업했지만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으로가 나무장수부터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등을 하며 떠돌았다.
 그곳에서 결핵을 앓게 되면서 다시 안동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김천, 상주, 문경, 점촌 등 경북지역을 떠돌다 1968년 일직교회의 문간방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서향으로 지어진 예배당 부속 건물의 흙담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지만 그 방에서 권정생은 글을 쓰고 아이들을 만났다.
 1969년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 모집에 ‘강아지똥’이 당선됐고 그해 ‘횃불’과 ‘찔레 꽃잎과 무지개’를 발표했다.
 1973년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1981년 울진에 있는 조그만 시골교회 청년회지에 소년소설 ‘몽실 언니’ 연재를 시작했고 이후 1982년 ‘새가정’으로 옮겨 1월호부터 시작해 1984년 3월에 끝냈다.

▲ 재현돼 있는 빌뱅이 언덕 흙집 내부 모습.

 1983년 권정생은 마을 청년들의 도움으로 마흔여섯에 처음으로 빌뱅이 언덕 아래 집을 지을 수 있었다.
 빨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은 낮은 천장에 8평에 불과한 집이었다.
 이 집에서 권정생은 25년을 살며 세상의 낮은 사람들과 맑은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썼다.
 1987년 이오덕과 함께 대구경북민족문학회 창립 고문이 됐다.
 2007년 70세 가까이 지내던 정호경 신부에게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낮고 외롭고 아픈 어린이들을 위한 ‘권정생의 문학세계’
 권정생은 지병인 결핵으로 평생을 앓았다.
 그는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세상의 소외된 것들을 보듬으려했다.
 권정생의 작품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이거나 버려진 것들인 이유도 그의 삶의 모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967년 고향인 안동에 정착한 그는 31살이던 1968년 살기가 너무 힘들어 물에 빠져 죽으려고 강가에 갔다.
 그러나 강물에 뜬 달을 보고 강과 달을 더럽힐 수 없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때 통곡하면서 쓴 시가 바로 ‘강아지똥’이었다.
 세상에 태어났다 그냥 죽는 게 억울해서 쓴 이 시를 이듬해 50일간의 산고 끝에 동화로 다시 만들었다.

 ‘강아지똥’은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 모집에 당선됐다.
 “난 더러운 똥인데,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강아지똥’ 중)
 ‘강아지똥’은 태어나면서부터 천대받은 강아지똥이 온몸에 비를 맞고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겨울을 나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민들레꽃으로 피어난다는 스토리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말하는 ‘강아지똥’은 권정생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의 작은 시골 예배당에서 종지기를 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가난은 평생 그에게 삶의 벗이었다.
 누군가에게 남루한 가난이라는 이름이 권정생에게는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도록한 문학적 자양분이었다.
 권정생의 작품 세계는 기독교적인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자연과 생명,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동화와 동시, 소설과 산문 등 다양한 장르로 담아냈다.
 “어머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여요?”, “그건 네가 괴롭더라도 참고 열심히 살면 알게 될 게다. 어떻게 사는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 최 선생의 ‘인생의 길’이란 말을 들은 뒤, 몽실은 곰곰이 생각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자기의 일만 아니라 어머니의 일도 아버지의 일도, 그리고 이웃의 살아가는 모습도 눈여겨봤다. 야학에는 부지런히 나갔다.(‘몽실언니’ 중)
 ‘강아지똥’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대변되는 ‘몽실언니’는 전쟁 후 가난과 소외,폭력 앞에서도 꿋꿋하게 생활했던 절름발이 소녀의 이야기다.
 몽실언니는 우리에게 누이거나, 여동생이거나 마을 아주머니거나 평범한 이웃이었다.
 결국 극심한 이념갈등과 남북한 대립의 아픈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밖에도 권정생은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오소리네집 꽃밭’, ‘점득이네’ 등 100여 편의 동화를 발표했다.
 권정생은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라가 어지러운 때에 태어나 가난과 병의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았던 권정생.
 그가 쓴 글은 특유의 천진한 상상력과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 푸르른 자연 속에 소박한 동화동산-권정생 동화나라

▲ 권정생 친필 원고.

 ‘권정생 동화나라’는 폐교였던 일직남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지난 2014년 10월 개관했다.
 유품을 모은 전시실과 체험관, 도서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에는 가난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권정생의 일대기가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동영상과 권정생의 유품 가운데 유언장, 책상, 소반, 일기장 등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중요 유품이 전시돼 있다.
 또한 다양한 판본의 저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재현돼 있는 빌뱅이언덕 밑 오두막집은 그의 삶과 맞닿아있듯 검소하고 소박하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정경호 신부에게 보낸 ‘유언장’ 중)
 전시실 마지막 켠에 만나볼 수 있는 그의 유언장은 많은 울림을 남긴다.
 끝끝내 어린이들의 친구이자, 소외된 사람들의 이웃으로 살고자 했던 그는 인세 수입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인세 10억원이 든 통장을 아이들을 위해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인세를 통해 2009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됐고 재단은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문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동화나라 앞 마당에는 선생의 대표작인 강아지똥과 몽실언니 등 다양한 캐릭터가 설치돼 있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민들레의 거름이 된 ‘강아지똥’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낮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줬던 작가 권정생.
 그가 피운 민들레는 오늘도 따뜻한 희망의 씨앗을 곳곳에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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