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세계를 보는 또 다른 통로
  • 경북도민일보
책은 세계를 보는 또 다른 통로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7.0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관 기자의 책 이야기
▲ 이경관 기자

 김살로메의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어린시절 책을 읽지 않던 내게 아빠는 두꺼운 월간 만화책을 사다주시며 그것이라도 읽으라 하셨다.
그러면 어린 나는 선심쓰듯 만화 몇 편을 골라 읽곤 다읽었다며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었다.
책이라면 죽어도 싫어하던 내가 책을 줄기차게 찾아 읽기 시작한 건 중학생 무렵이었다.
사춘기 소녀에게 한강의 ‘여수의 사랑’이나, 신경숙의 ‘외딴방’, 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어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통로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그 시기 내가 읽은 책들은 내가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줬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글을 쓰고, 읽는 일이 일종의 업이 되면서 지난날 세계를 열어줬던 책에 대한 감동과 희열은 사그라졌다.
그러다 지난해 말 등단 12년만에 첫 소설집을 출간한 김살로메 작가를 만나며 다시금 그때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12년이라는 긴 산고 끝에 내놓은 책은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
긴 시간이 걸린 탓일까 작가가 토해내는 이야기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울부짖음이었다.
특히 표제작인 ‘라요하네의 우산’을 비롯해 ‘암흑식당’은 작품집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수작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대체로 진실했다.(…)어둠 속 피사체들에게서는 불허한 것을 탐하는 자의 희열 같은 게 묻어 나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너무 빨리 허위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바꾸어 말하면 빛의 세계는 인간에게 다양한 가면을 쓰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으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45~46쪽)
작가는 보이지 않는 암흑이라는 환경 속에서 더욱 은밀해지고 솔직해지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는 내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갖고있는 가면의 일종으로 해석됐다.
밝은 일상의 공간은 고객과 상사 앞에서는 시종일관 웃어야하는 모든 근로자들의 세계였고, 암흑이 낭자한 식당은 그들이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소설 속 눈길을 끄는 장면은 밀린 월급은 주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성적으로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장’에게 암흑식당에 함께 갈 것을 제안하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뒤엉킨 뒤 밀린 월급을 받아낸다.
이를 지켜보며 카메라로 담고 있는 ‘김’은 상대에 대한 혐오와 자기연민이 동시에 묻어나는 ‘여자’의 표정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결국 이들은 모두 가면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욕망을 실현하고자했던 인간일뿐이었다.
돈을 빌미로 여자를 잡아뒀던 사장도, 몸을 통해 돈을 돌려받는 여자도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쓰는 김도 도덕적으로는 옳지 않다.
그저 작가는 은밀할수록 솔직해지고 틀어막을수록 대담해지는 인간의 욕망을 한번쯤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암흑식당은 여성으로 사회에서 받던 억압, 직장의 스트레스 등을 떨쳐내고 오롯이 나로서 성립할 수 있는 일종의 일탈처로 느껴졌다.
그런 공간이 있다면 한번쯤 꼭 가보고 싶어질만큼.
소설 ‘라요하네의 우산’은 좌우 대칭 강박증이 있는 ‘샌드리’와 그녀와 한 방을 쓰게 된 여행메이트 ‘지미’의 이야기다.
쉼을 찾아 떠난 지미와 강박증을 이기기 위해 여행에 나선 샌드리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긋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작지만 큰 영향을 주고 받으며 또 다른 성장을 한다.
내게 지미와 샌드리는 나를 포함한 외로운 현대인들의 자화상으로 와닿았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우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83쪽)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뒤 홀로 해외를 찾은 지미, 알코올중독 아버지로 인해 벌어진 어머니의 사고를 목격한 뒤 대칭 강박을 앓고 있는 샌드리까지.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다르지 않았다.
작가가 말했듯 소설 속 인물들과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우산은 꼭 필요한 상처치유제가 아닐까.
김살로메 작가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은 내게 오랜만에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줬다.
시대를 읽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구.
책은 10년 전도 지금도 내게 세계를 보는 또 다른 통로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