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국가의 근간… 국민 철저한 안보관 가져야”
  • 손석호기자
“안보는 국가의 근간… 국민 철저한 안보관 가져야”
  • 손석호기자
  • 승인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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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人-이석수 전 경북도 초대 정무부지사

[경북도민일보 = 손석호기자]   원로(元老).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해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
이석수(82·사진) 전 경북도 초대 정무부지사는 포항 토박이로 6·25당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이후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부지사까지 지내며 식량증산, 경제개발 등에 공을 세워 국가발전과 경제도약기의 산증인으로서 대표적인 지역 원로 중 한 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전 부지사를 만나 그의 삶에 대해 들어 봤다.

  - 9급부터 시작해 경북도 부지사로 공직을 마감했다. 비결은?
 “지금은 시민을 위한 친절이 강조되는 ‘서비스공무원’ 시대이지만 당시는 경제발전 등 국가 시책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리더십공무원’, ‘추진력·아이디어 공무원’의 시대였다.
 맡은 바 업무를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식량증산, 포항제철 건설, 해외 건설 지원 등 국가발전과 제 업무가 그 궤를 같이한 것 같아 큰 보람을 항상 느끼고 있다.
 지난 1963년 당시 영일군 오천면 지방농업기원보(현 농업직 9급)로 공직을 시작했다.
 당시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식량증산 5개년 계획이 적극 추진되고 있었다.
 이때 기획한 ‘오천면 식량증산 계획’이 영일군 전체 1등을 차지했다.
 이어 경북 1등을 거쳐 전국 2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상고를 졸업해 주산·타자·회계 등에 밝아 업무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농지정리 업무도 원활히 수행했다.
 1968년께 포항제철 건설 초기에는 건설부 포항공사사무소에 자원해 토지보상·주민이주 등을 도맡아 했다.
 이후 건설부로 자리를 옮겨 건설기업 해외 진출 지원 업무에도 앞장서다 보니 건설부 과장 등을 거쳐 경북도 초대 정무부지사까지 하게 됐다.
 ‘누구누구의 업무로 내 일이 아니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닌 적극적 자세로 열심히 하다보니 인정을 받게 됐고 관운도 따른 것 같다.
 우리 민족 식량 자급자족, ‘산업의 쌀’ 철강 생산 기지 포항제철 건설, 해외 건설 수주 지원 등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 증대에 작으나마 역할을 했다는데 깊은 보람을 느낀다.”
 
 -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최근 매일보훈대상을 수상했다. 소감은?
 “경북도 초대 정무부지사로 재직할 때부터 있었던 30여년 역사의 권위있는 상을 받게 돼 무척 뜻 깊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시상을 위해 직접 와 더욱 영광이다.
 국가 흥망은 안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망하면 속한 개인은 가난을 겪을 뿐이지만 국가 안보가 망하면 국가 존폐 자체가 위협받는다.
 최근에는 경제·생활 문제가 최우선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국가 근간에는 항상 안보가 있다.
 보훈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을 위해 국가가 보상, 예우를 해주는 일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6·25 유공자는 물론 독립투사와 유가족, 경찰, 소방관, 군인 등에 대한 한층 두터운 보호와 지원이 안보를 더욱 튼튼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올림픽 등을 잘 치뤄 세계 속 국가 수준은 높지만 안보관은 아직 깊지 못한 것 같다.
 거듭 국가가 영원히 존속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철저한 안보관을 당부한다.”
 이 전 부지사는 대구지방보훈청 후원, DGB대구은행 협찬, 지역 한 언론사가 주최해 지난 22일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17 매일보훈대상 시상식에서 보훈대상을 받았다.
 그는 6·25전쟁 당시 17세 나이로 학도병에 자원입대 해 격전지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6·25전쟁에 대한 증언과 전후세대 및 청소년을 위한 국가관 확립 교육 등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학도의용군회 경북도지부 지부장을 맡으면서 학도병 추모식과 학도병 참전 전승기념행사 등을 열고, 몸이 불편한 회원과 무연고 회원들을 위한 위로 방문 및 전사자 신원 확인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포항 발전을 위한 제언이 있다면?
 “엉뚱한 소리일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아버지와 아들간에도 다같이 아는 노래가 없다.
 우리 때는 같이 부를 정도로 세대간 공감이 있었다.
 좋은 말, 조언도 마찬가지로 소통과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 만큼 말을 아끼고 싶다.
 다만 평생 좌우명으로 근면을 상징하는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와 인내를 뜻하는 ‘진정한 참음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 두가지를 뒀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 지자체·국가도 변혁에 대응하려면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포항이 인구 50만명 중견도시로 현상 유지를 하려면 모든 정책을 소극적으로 해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100만명의 대도시, 치열한 경쟁 속 미래 선도도시가 되려면 다양한 정책 특히 기업 지원, 관광 활성화 정책을 적극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 혁명 등 변화와 혁명 속 ‘안된다’는 부정적 사고가 아닌 ‘된다’, ‘할수 있다’ 등 긍적·적극·도전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시의 행정을 하는 분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시민을 위한  정책을 잘 펼쳐주길 바란다.”

-낙동강 전투 참전한 ‘포항토박이’

1936년 포항에서 태어나 연일읍 유강리에서만 6대째 살아온 포항 토박이다.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다.
1963년 고향 영일군(현재 포항)에서 9급 농업직 공무원으로 입문했다.
공직 초창기 기획한 ‘오천면 식량증산 계획’이 영일군 1등, 경북 1등을 거쳐 전국 2등을 수상해 그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포항제철 건설 당시 건설부 포항출장소 업무에 자원해 토지보상 등에 적극 나섰다.
또 건설부로 자리를 옮겨 해외 건설 진출 지원 등 그의 업무와 국가발전은 항상 궤를 같이 했다.
건설부에서 자연공원과장, 토지이용계획과장, 총무과장, 한강홍수통제소장,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후 경북도 초대 정무부지사로 공직을 마무리 했다.
또 고향 포항에 대한 애향심을 바탕으로 포항~경주 건천 20번 국도 연결 공사, 유강 오버브릿지 건설 등 포항 시민과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항상 제시했다.
최근에는 포항 각 읍면동 지명과 그 유래를 담은 ‘포항의 지명과 유래’를 저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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