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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水 정완영 선생, 고향의 품에서 민족을 노래하다문학관 순례-7. 김천 백수문학관
이경관기자  |  ggl@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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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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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삶의 아름다운 모습에 민족의 정서 담아 시조로 표현한 백수 정완영 선생. 그의 혼을 만나볼 수 있는 백수문학관 전경.

   

▲ 해설사가 백수 선생의 시를 관람객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 정완영(1919.11.11.~ 2016.8.27.)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들은 그 자체로 한권의 특별한 책이다.

경북·대구에는 작가들의 삶과 문학적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문학관이 여럿 있다.
삶의 지혜를 찾아 지역 곳곳에 자리 잡은 문학관을 둘러보자.

 “시인은 참사람이 돼야 한다.”
 한국 시조문학의 거봉 백수(白水) 정완영(鄭椀永).
 그는 언제나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자신과 자신의 시가 깨끗한 물, 오염되지 않은 물이 돼 세상을 정화했으면 했던 그는 자신의 고향인 김천에 시정을 담았다.
 고향 김천(金泉)을 너무나 사랑했던 그는 호를 김천의 천(泉)에서 흰 백(白)과 물 수(水)를 나눠 맑고 깨끗한 물을 뜻하는 ‘백수(白水)’로 지었다.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며, 조국과 고향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는 선생은 그 열정으로 쓴 1000여편의 시절가를 남기고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포항에서 출발해 익산포항고속도로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영남대로를 달리다보면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도 전에 산을 열어 터를 잡았다는 직지사 가는 길을 만난다.
 직지천과 산 초입 자리한 마을과 직지 문화공원을 지나면 백수 선생의 혼이 깃든 ‘백수 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포항에서 출발해 차로 2시간가량 총 156.95㎞를 가야하는 먼 여정이다.
 그 끝에서 고귀한 정신을 담은 청명한 물을 마주한다.
 
 △ 백수 정완영의 생애
 한국 시조문학의 거목 백수 정완영 선생은 1919년 11월 11일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에서 태어났다.
 1923년 문명 경향에 들렀던 조부로부터 한학과 주학을 배웠다.
 1927년 봉계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4학년 때 여름 홍수로 농경지가 유실되자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3년동안 각지를 유랑했다.
 1932년 오사카 천황사 야간부기학교에 입학했으며 2년 수료 후 귀국했다.
 1934년 귀국해 보통학교 5학년으로 복학한 그는 이선흥·홍성린이라는 두 교사에게 우리의 전통가락과 시조에 대해 배우며 시조에 큰 관심을 갖게됐다.
 1946년 김천에서 시문학 구락부를 발족했으며 1947년 동인지 ‘오동(梧桐)’을 창간했다.
 1948년 작품 ‘조국’을 창작했다.
 1960년 국제신보 신춘문예 작품 ‘해바라기’ 당선했으며 서울신문 신춘문예 ‘골목길 담모퉁이’ 입선했다.
 마흔을 넘긴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조국’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69년 시집 ‘채춘보’를 출간했으며 1976년 시선집 ‘산이 나를 따라와서’를 출간했다.
 1979년 동시집 ‘꽃가지를 흔들듯이’를 출간했다.
 1992년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4년 직지사 경내에 시비를 건립했다.
 199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으며 2005년에는 경북도에서 선정한 ‘경북도를 빛낸 100人’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6년 시전집 ‘노래는 아직 남아’, 2007년 ‘가랑비 가랑가랑’을 출간했다.
 2016년 8월 27일 경기도 산본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한국문학상, 가람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육당문학상, 만해시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이설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백수 정완영의 문학세계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 마디 에인 사랑/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둘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피 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청산아, 왜 말이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조국’ 전문)
 정완영 선생은 부지런함이 시인의 제일의 무기로 삼으며 창작활동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선생은 신춘문예 등단 이후 거의 매일 시조 작품을 써오며, 정화된 시어를 선보였다.
 특히 대상을 절묘한 시적 상상력으로 변용시키고, 시조의 음율을 조화롭게 구성해 아름다운 서정시의 경지를 이뤘다.
 그는 생전 “내 생일이 11월 11일인데, 황악산도 1111m”라며 고향사랑을 표현했다.
 그에게 자신과 고향 김천, 황악산은 하나였다.
 직지사를 품은 황악산은 그에게 어린시절 놀이터이자 문학의 근거지였다.
 자라온 환경 탓일까 그는 불교적 사유를 담은 작품을 많이 창작했다.
 인간의 깊은 정신세계에 대한 관찰과 자연을 대하는 세심한 마음이 불교의 가르침이라 여겼다.
 선생은 시에 불교의 정신을 담았다.
 그리고 그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참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선생의 시는 민족의 고유 언어를 최대한 정제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스럽게 민족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민족의 정서는 불교로 확장됐다.
 선생은 특히 45자 안팎의 글자로 의미를 함축시켜야 하는 정형시조를 즐겨 썼다.
 그는 “시조를 쓰면서 내적 수행을 통해 오묘한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 가운데 시적 감흥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며 “깨달음을 얻기까지 시인은 끊임없는 수행과 정화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은 시 ‘조국’ 등을 통해 민족적 서정을 재확립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선생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던 2013년까지 그는 대부분 타자기나 컴퓨터로 작업했다.
 일제강점기 경찰에 잡혀가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손글씨를 잘 쓰지 못했기 때문.
 불편한 손에도 선생은 1000여편이 넘는 수작을 남기며 평생을 펜을 드는 시인으로서 살았다.
 “동네서/젤 작은 집/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젤 큰 나무/분이네 살구나무// 밤 사이/활짝 펴 올라/대궐보다 덩그렇다.”(‘분이네 살구나무’ 전문)
 말년에는 동심을 표현한 동시조를 주로 쓰면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밝게 하려고 애썼다.
 
 

   
▲ 전시실 내부 모습.

 △ 백수문학관
 직지사 초입에 자리한 백수문학관은 2008년도에 건립됐다.
 백수문학관은 생존 문인을 기리는 문학관이자 시조시인으로서는 국내 첫 사례로 국내의 많은 문인들과 지자체의 주목을 받았다.
 문학관은 전시실을 비롯해 3000여점의 기증도서가 비치된 자료실, 세미나실, 백수 선생의 집필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그의 흉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 뒤로 그가 살았던 삶의 이야기와 작품이 펼쳐진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시집과 사진들, 문우들에게서 받은 편지, 평소 사용했던 안경과 펜, 염주, 손목시계, 송곳 등의 유품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 가운데 구성된 선생의 방은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보여주듯 소박하며 정갈하다.
 코트와 모자가 걸린 옷걸이와 그의 연작시 ‘겨울나무’가 쓰여진 열 폭 병풍에 눈길이 간다.
 방 가운데 자리한 작은 책상에는 부채와 원고지, 안경, 펜, 필통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외에도 선생이 직접 만든 서각과 그의 작품을 쓴 작가들의 작품 등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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