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는 아직 우리와 같은 하늘아래 산다
  • 모용복기자
살인마는 아직 우리와 같은 하늘아래 산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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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미궁에 빠졌던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범인이 15년 만에 잡혔다는 소식이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깨진 맥주병 조각에 남아 있던 3분의 1짜리 쪽지문이 결정적 증거였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지문조각 분석이 불가능했지만 최신 수사기법 발달로 사건 해결 길이 열린 것이다.
 경찰이 장기 미제 사건을 다시 들춰내 재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태완이법’ 덕택이었다.
 태완이법을 설명하려면 18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기에 너무나 가슴 아픈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지난 1999년 5월. 대구 동구에 사는 6살 태완이는 집 앞 골목에서 괴한에게 황산테러를 당해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눈과 코가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49일을 견디다 끝내 하늘나라로 떠났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속절없이 세월은 흘러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해지자 살인범 공소시효 폐지여론이 들불처럼 일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태완 군의 부모가 낸 재정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태완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태완이법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범죄에만 해당되므로 정작 법 개정의 원인이 된 태완이 사건은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범인이 뒤늦게 잡히더라도 처벌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시 수많은 단체와 국민들이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탄원서와 진정서를 재판부에 접수하고 태완군 부모는 법원 앞에서 1위 시위를 이어갔지만 법원은 끝내 외면했다. 이유는 ‘증거불충분’
 국회가 태완이법을 지각 통과시킨 것도 문제지만 대법원이 서둘러 재정신청 재항고를 기각해 사건을 영구미제로 남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기각결정 한 달 뒤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태완이가 병상에서 죽어가면서 힘겹게 토해낸 진술로 용의자가 특정되는 듯했지만 경찰은 태완이보다 용의자의 말을 더 신뢰했다.

 천인공노할 사건 앞에서 온 국민이 울분을 토하는데 서슬퍼런 ‘민중의 파수꾼’들이 태완이 사건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순한 양처럼 차분할 수 있었는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론으로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해서는 안된다. 감정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하지만 경찰과 법원이 태완이의 진술과 부모의 호소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더라도 공소시효를 넘기는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생명의 억울한 죽음과 가족의 고통, 국민의 상처 입은 마음에 등을 돌린 법은 그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마저 느끼게 한다.
 사법당국은 말할 것이다.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된다고. 그러면 묻는다. 한 명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피어나지도 못하고 꺾여버린 어린 영혼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줄 법은 어디에 있었는지, 법이 오히려 무법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닌지 자성해보아야 한다.
 정치권도 공소시효 폐지를 조금만 더 일찍 서둘렀더라도 태완이를 그렇게 억울하게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국,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 서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살인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고 있고 우리와 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도 2010년 살인죄, 강도살인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정치권의 늑장대응이 태완이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초래했다. 당리당략에만 매몰돼 국회에서 싸우느라 국민의 삶은 돌아보지 않은 결과다.
 사람을 죽인 범인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교도소 안에서 잘 먹고 잘 살아가는데 가족을 잃은 유족은 매일매일을 슬픔과 분노와 원망에 치를 떨다 쓸쓸히 세상을 등지는 나라. 피의자 인권은 중요시하고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외면하는 나라. 이것이 과연 나라다운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섣부른 사형제 폐지 주장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비수(匕首)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태완이는 떠났고 그를 참혹한 죽음으로 내몰았던 범인은 남아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땅 위에서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현재의 법 체계에서는 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怨讐)를 처벌할 수 없다 할지라도 반드시 그를 색출해 내어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과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킬 수 있다. 또한 법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만천하(滿天下)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법당국의 뜨거운 가슴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범인을 잡아 처벌할 수 있게 이제라도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태완이가 주고간 선물로 10년 넘게 범인이 잡히지 않은 장기미제 사건이 속속 해결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을 비롯해 6건이 해결됐으며 현재 268건이 남아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 참에 장기미제사건을 전담하는 수사인력을 배치해 마지막 한명의 범인까지도 붙잡아 억울한 희생자가 남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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