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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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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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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살로메 작가

[경북도민일보]  세상사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엉뚱한 일에 휘말리기도 하고, 부조리한 상황과 맞닥뜨리게도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생채기를 입는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상황 앞에서 그래도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우리는 가장 손쉬운 상대인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곤 한다. 그래서일까. ‘내 탓이요,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자기 성찰의 말이 가끔은 인간 운명을 자조하는 비탄의 노래로 들리기도 한다.

 자신의 잘못 탓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고 해도 금세 깔끔해지는 건 아니다. 자갈밭 같고 소금밭 같은 마음의 찌꺼기는 한동안 남는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까. 그저 시간만이 필요하다. 거칠고 짠내 밴 마음을 평상심으로 돌리는 데에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 흙 묻은 손끝을 닦아주고 쓰라린 명치를 감싸줄 손수건 같은 시간. 한 장의 아마포로 만든 손수건이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힐링 또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 그 시간을 좇아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또 누군가는 한 권의 책에다 밑줄을 긋는다.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에 이런 손수건에 관한 장면이 나온다. 루마니아 출신 독일인 레오는 먼 타국인 소련의 수용소에서 생활한다. 생계형 석탄을 팔러 간 집에서 한 노파를 만난다. 땟국에 전 손, 절박한 눈빛으로 석탄 보자기를 내미는 레오. 노파는 레오에게서 이웃의 밀고로 시베리아로 추방당한 자신의 아들을 읽는다. 노파는 말없이 석탄 한 덩이를 사주고 뜨거운 수프까지 내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장롱 깊숙이 숨겨둔 아마포로 된 흰 손수건을 꺼내 레오의 손바닥을 감싸준다. ‘이 손수건을 가져도 좋아.’라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한 영혼의 찌름을 레오는 경험한다. 5년간의 수용소 생활 동안 레오는 노파의 손수건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굶주림에 시달려 몇 번이나 먹을 것으로 바꿀 뻔했지만 끝까지 손수건을 지켜낸다. 트렁크에 고이 간직했던 손수건은 귀향길에 오른 레오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다.
 레오에게 손수건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었다. 극한 상황에 몰린 자가 꿈꿀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상징했다. 아프리만큼 아름답고 처절하게 손수건은 인간에 대한 희망의 환유로 기능한다. 자신에게서 아들을 느끼며 양철 그릇 가득 수프를 떠주던 노파에 대한 연민, ‘너는 돌아올 거야’라고 나무 복도에서 말하던 할머니에 대한 믿음, 굶주림도 추억이었노라고 후일담을 늘어놓고 싶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희망의 대표적인 예였다. 레오가 손수건을 포기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손수건을 놓치는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말 것이기에. 끌어안고 토닥이고 기다리는 의미로 헤르타 뮐러는 손수건을 불러 앉혔다.   
 복잡 미묘한 게 인간인지라 사는 게 항상 꽃밭일 수는 없다. 우리 일상은 자갈밭과 꽃밭의 무한한 변증법으로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 우리는 무심코 내딛은 발자국에 스치는 꽃잎이 되거나, 시린 무릎을 힘겹게 굽혔다 일으켜 세워야 하는 나귀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수백 번 무너진다한들 영원한 패배는 아니라는 사실.  
 가뭄으로 바닥난 저지대처럼 마음이 갈라지는 날이면 레오의 손수건을 꿈꾼다. 여러분, 손수건이 있나요? 헤르타 뮐러가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집 나서던 그녀에게 한 말이기도 한 ‘손수건 있니?’라는 아프면서 다정한 말. 그 말은 상처에 바르는 연고이자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다. 상처가 나도 연고를 바르지 않으면 더디 아물고, 별이 아무리 빛나도 마음에 들이지 않으면 그 반짝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레오의 손수건만큼은 못되더라도, 눈물 콧물 닦을 수 있는 손수건 한 장의 안부를 물어본다. 기왕이면 헤르타 뮐러 식으로. 여러분, 손수건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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