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은 정부에 ‘노’ 라고 말해야 한다
  • 모용복기자
한수원은 정부에 ‘노’ 라고 말해야 한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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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14일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전날 한수원 경주 본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사회가 노조와 울주군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이날 경주 모호텔로 장소를 옮겨 의결했다.
 공사 일시중단 기간은 공론화위원회 발족 시점부터 3개월 간으로 이 기간 내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수원은 다시 이사회를 열어 추후 방침을 결정할 계획이다.
 이날 한수원 이사회는 기습작전을 방불케 했다. 한수원 이사들은 전날 회의 무산 직후 비공개리에 이사회를 열자는데 동의하고 전원 돌아가지 않고 경주에서 대기했다.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울주군 주민들은 13일 늦게 귀가한 뒤 다시 경주에 복귀하지 않았으며 노조도 특별한 정보를 얻지 못해 특별한 대응전략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수원 안팎에서 다음주 초 쯤에야 이사회가 열릴 계획이란 소문만 믿고 있다 허를 찔렸다.
 전날 이사회 참석을 위해 건물 안으로 진입하던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주민들에 의해 가로막히자 “신고리 5·6호기 계속 건설을 위해 주민들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며 “한수원은 언제나 주민들 편에 서서 주민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 사장의 발언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어서 발언의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한수원이 혹시 정부의 무리한 정책추진에 반기(反旗)를 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하룻밤 사이에 소위 ‘까라면 까는’ 공기업의 생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한수원 사장의 발언도 결국엔 노조와 주민들의 반발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우려는 미봉책에 불과했음이 여실히 증명된 셈이다.
 현 정부는 사실상 서민으로 대변되는 국민과 노조로 대변되는 근로자에 의해 탄생한 정부다. 그런 정부가 주민과 노조의 저항을 받는다면 정책추진에 있어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봐야 맞다.

 탈원전이 아무리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다 할 지라도 국가 에너지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대 정책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추진하고, 달랑 공문서 한 장으로 수조원이 투입된 공사를 중단시킨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지난달 29일 정부는 한수원에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중단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이행조치를 신속하게 취해달라’는 내용의 한 장 짜리 공문을 내려보냈다. 한수원이 이 공문을 공사에 참여한 17개 업체에 그대로 전했음은 물론이다.
 한수원이 공사중단으로 발생하는 모든 법적 책임을 감수하면서도 정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 비위를 맞추려고 무조건 거수기 노릇을 했다간 더 큰 역풍(逆風)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정부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비판을 받는 국민연금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게다가 한수원 노조는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결정과 관련 이사진을 배임혐의로 고발할 방침을 세우고 있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성급한 탈원전정책이 국가 에너지대계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에너지 전문가집단인 한수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피해 시공사들로부터 천문학적 손해배상청구가 잇따를 것이며 1만명이 넘는 대량 실직사태·지역주민들의 상실감으로 인한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 뻔하다.
 몇 사람의 자리 보전이 문제가 아니라 한수원의 존립을 흔드는 심각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수원은 이제부터라도 국가 에너지백년대계를 위해 정부의 부당한 방침과 지시에 분명하게 ‘노’라고 할 수 있는 공기업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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