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수하와 이도백하
  • 모용복기자
로수하와 이도백하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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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백두산 가는 길에 두 개의 마을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삼림 사이로 잘 닦인 도로를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폐가(廢家)와 다름 없는 집들이 줄지어선 마을이 나온다. 중국 길림성 무송현 로수하(露水河)다. 행정구역상 진(鎭)이라 불리는데 우리의 면 단위에 해당하는 인구 2만 여명의 마을이다. 백두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길에 있다.
 길 양 옆으로 다 허물어져가는 오래된 건물들은 몇 십년이 지나도록 손을 대지 않아 벽에는 이끼가 끼고 떨어져나간 판자가 흉물스럽다.
 마을은 오래 전 성장을 멈춰버린 듯 정적이 감돌고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없다.
 마을이 이토록 황폐화된 것은 관리들이 부패했기 때문이라는 조선족 안내원의 설명이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당국의 손길의 미치지 못해 내려오는 관리들마다 정부 돈을 착복하는데 혈안이고 민생은 돌보지 않아 주민들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고 자기집 문짝 하나 고칠 의욕을 상실한 채 마침내 유령도시를 방불케하는 처참한 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민 대부분이 조선족인 그들의 고달픈 삶이 건물 외벽에 켜켜이 쌓인 이끼처럼 처량하다.
 중국 당국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관리들을 척결한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이곳에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관리들의 수탈을 막을 장치가 전무한 까닭에 그들의 학정(虐政)에 고스란히 노출된 주민들의 삶이 온전할 리 없다.
 폐허도시 로수하를 지나 1시간여 차를 달리면 잘 정비된 도로와 우후죽순으로 솟은 제법 큰 규모의 건물들이 즐비한 마을이 나온다.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 이도백하(二道白河) 진(鎭)이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해 있으며 로수하와 비슷한 크기 마을이다. 면 단위에 불과한 동네지만 외형상으론 인구 몇 십만의 중소 도시 부럽지 않은 번화함을 자랑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도로 왼편에 보이는 농심에서 운영하는 백산수 공장의 한글간판이 반갑다.
 이곳은 낮보다 밤풍경이 더 이채롭다.
 잘 정돈된 식당가, 거리에는 휘황찬란한 네온과 루미나리에가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고 공원에는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한데 어우러져 스텝을 밟으며 군무(群舞)를 추는 광경이 눈길을 끈다. 무질서 속 강제되지 않은 규칙에 의해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곳이 공산국가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공원 다른 한쪽에는 남녀 어른 몇이 모여 제기차기를 하고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부채춤을 배우느라 열심이다. 사람들 얼굴 표정은 즐거움과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우리 전통 민속놀이가 한족(漢族)과 조선족이 섞여 살고 있는 이 곳 백두산 아래 첫 동네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생활문화로 정착돼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잘 정비되고 질서정연한 낮의 모습과 밤의 정열이 인구 2만 이도백하를 활기 넘치는 도시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이도백하가 이와같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청렴한 관리들이 정치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안내원의 설명이다. 물론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백두산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소비를 하는 덕에 풍요로워진 면도 없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부차적이다. 부패한 관리 아래에선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돌아오는 수익은 쥐꼬리 만하기 때문이다. 로수하와 이도백하. 백두산 아래 나란히 자리한 두 마을의 너무나 상이한 모습을 보며 관리의 청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다.
 관리가 부패하면 평등은 허울 뿐 일부 특권층만 배를 두드리며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대부분 주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반대로 관리가 청렴해서 잘 다스리면 마을이 번영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로수하처럼 언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질 지 모를 운명이다. 그래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말이 생겼을 터이다.
 오늘날까지 관리들 손에 의해 주민들 운명이 결정되는 공산국가 중국의 두 얼굴이다.
 백두산 품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두 개의 마을을 지나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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