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할 사랑의 열정으로 만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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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할 사랑의 열정으로 만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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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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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경북도민일보] 김일영의 클래식 이야기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이 아름다웠다면 그들 부부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며 남몰래 클라라를 흠모하며 사랑을 키운 독일의 대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만약 브람스의 짝사랑이 없었다면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이야기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였을 것이다.
 브람스가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던 바이올린연주자 ‘요하임’의 추천으로 슈만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 슈만은 자기가 집필하고 있던 음악잡지에 능력 있는 많은 신인 음악가들을 소개하고 알렸는데, ‘요하임’ 생각에 그 음악 잡지에 브람스가 연재된다면 한낮 무명에 그쳤던 청년 작곡자 브람스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될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다고 생각했고 슈만에게 브람스를 적극 추천했다.
 브람스의 나이 20세 때의 이야기이다.
 브람스는 그의 고향 독일 함부르크에서 음악회를 하고나서 곧장 요하임의 추천으로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에게 그의 작품을 평가해달라고 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슈만은 어찌된 영문인지 브람스의 작품이 담긴 봉투를 개봉도 하지 않고 바로 반송처리 해버린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브람스는 슈만의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가 얼마나 훌륭한 작곡자인지 알고 싶어 슈만의 작품을 연구했다.
 그 후 브람스는 슈만의 예술세계에 흠뻑 빠져 연구할수록 깊은 감명을 받아 구겨진 자존심을 버리고 무작정 용기 내어 슈만을 만나러 가게 됐다.
 이때 비로소 슈만의 부부는 브람스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젊은 청년의 용기와 수준 높은 그의 작품성에 단 한번 만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단언했다.
 그 후로 브람스는 슈만부부의 집에 머물며 여러 작품을 쓰고 슈만과 클라라에게 작곡 공부를 배우게 됐다.
 당시 슈만부부의 일기에는 매일같이 브람스의 찬사가 없는 날이 없었을 정도로 그를 높이 평가했다.
 슈만은 그 당시 자신의 음악잡지 통해 무명인 쇼팽과 브람스를 추천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브람스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고 자기 인생을 바꿔준 슈만과 클라라에게 항상 깊은 존경과 제자로써의 감사의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생각도 말아야 할 스승의 처 ‘클라라’에게는 비밀스럽고 말할 수 없는 짝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브람스보다 14살 연상의 여인,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렸던 여인, 30대 중반으로 최고의 성숙미를 갖은 아름다운 여인, 인간적으로 다정다감하고 브람스에게 더욱더 친절했던 여인, 바로 슈만의 부인 클라라였던 것이었다.
 젊은 브람스가 뛰어난 미모와 음악적 재능을 소유한 여인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꼈음은 그에게는 분명한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도 그러하겠지만 19세기에도 마찬가지로 몇 살 차이 나는 연상커플 있었겠지만 14살 차이의 연상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브람스의 사랑이 이해될만한 이성편력이 있는데 바로 브람스 어머님이 아버지보다 17세나 연상인 특별한 가정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브람스 집안 분위기가 그에게는 사랑이라는 관점에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남몰래 혼자 사랑을 했던 스승의 여인에게 존경을 경애로, 사랑의 표현을 존경이라 부르며 브람스의 짝사랑을 타이르고 이 사랑은 안된다며 혼자 채찍을 들며 마음을 달래었던 그가 오로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브람스의 작품‘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2번’을 클라라에게 헌정할 만큼 오로지 음악을 통한 사랑의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브람스는 분명 혼자 짝사랑을 하며 죄를 짓는 듯 한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더 이상 클라라 주변에 맴돌고 있는 것을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헌신해준 스승을 배신하는 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스승과 제자사이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그는 독일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더 큰 성공을 위해 빈에서의 음악활동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내심 짝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짐은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잊으려고 노력했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다시금 진정한 사랑으로 피어나는 전환기를 갖게 되는데 바로 클라라의 남편인 슈만이 가족력에 의한 정신병 발발로 그의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내용인즉 브람스는 1853년에 슈만이 정신병이 악화돼 뒤셀도르프 라인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을 중단하고 슈만부부에게 급히 달려갔다.
 당시 슈만의 부인 클라라는 6명의 아이와 뱃속에는 7번째 아이가 임신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브람스는 온힘을 다해 절망에 빠진 클라라를 도우려고 애썼다.
 그때 클라라를 위로하기위해 쓴 곡이 있는데 브람스 피아노3중주곡 제1번 작품번호8번, 슈만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번호9번을 작곡하고 클라라에게 헌정했다.
 이런 브람스의 행동에 클라라는 큰 위안을 얻고 그녀의 아이들도 큰 상처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슈만의 집안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이에 브람스는 스승에 대한 존경은 더 이상 헤어져 나올 수 없는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마침내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는 그의 양심의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클라라 본인은 슈만의 아내 서로가 사랑할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과 ‘모성적 우정이 우리에게 있을 뿐’이라고 되풀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클라라 역시 브람스와의 관계에서 어두웠던 현실에서 한 가닥의 희망과 기쁨을 느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슈만은 만년에 정신병으로 고생하면서 2번에 걸친 자살시도와 그 후 2년간의 정신병원의 생활로 1856년 46세의 나이로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슈만의 서거 소식에 브람스는 큰 충격이었다. 아버지와 같고 스승이었으며 자기 인생을 바뀌게 해준 은인이었기에 그에게는 슬픔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필자의 개인 생각으로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에게는 마음한구석에 슈만이 빨리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인간 브람스입장에서 보면 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가 이런 생각을 했든 안했든 무의식적으로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보인태도는 분명한 죄책감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런 죄책감에 브람스는 자신이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종교적이고 숭고한 작품이 될 ‘독일 레퀴엠’ op45 (독일 진혼곡)을 슈만의 죽음에 영감을 얻어 만들게 됐다.
 브람스는 20세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만났을 청년 때부터 64세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마음속의 여인은 오직 클라라였다.
 이루지 못해 바라만 봤던 사랑의 힘으로 그곳에서 생겨나는 모든 열정의 힘으로 그의 창작은 집중되고 만들어졌다.
 클라라의 말년에 1895년 가을 프랑크푸르트에서 헤어진 후 그녀가 뇌졸중으로 쓰려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브람스는 영원한 이별을 직감했고 브람스는 작곡가로써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에 앞에 선 그녀를 신께 의지하는 내용으로 성경 말씀에 의한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작곡했다.
 1896년 5월 20일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브람스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일에 있는 클라라의 무덤으로 황급히 도착해 그녀의 죽음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브람스는 간암으로 64세로 세상을 마감한다.
 브람스는 슈만이 죽고 그의 유족을 돌보는데 열성을 아끼지 않았다.
 미망인인 클라라에게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저 플라토닉 사랑을 했던 그의 숭고한 사랑은 지고지순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승의 아내를 남몰래 사랑했고, 스승 사후에도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클라라를 보호했던 제자 브람스, 요즘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소설에 등장할만한 이야기이지만,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 그리고 그의 제자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강렬했던 이 세 명의 삼각관계의 사랑 이야기는 영원히 우리에게 남을 소설 같은 사랑이야기가 됐다.
 요하네스 브람스(독일Johannes Brahms 1833년~1897년)는 독일의 대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이다. 독일 함부르크 출생으로 대부분의 음악활동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했다. 브람스는 독일 낭만파 음악가들 중에서 보수적 완벽주의자였고 음악적 혁신자였다. 그의 작품은 고전파적인 양식인 베토벤의 영향을 받아, 웅장하고 중후하면서 남성적인 향취를 갖고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일개 남성으로써의 수줍음, 사랑스러움, 아름다운 서정의 음악도 함께 지니고 있다.
 대표작품으로는 브람스가 작곡한 4개의 교향곡과 바이올린협주곡, 헝가리 무곡, 대학축전 서곡, 독일 레퀴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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