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키울 사람 없는’ 국정원 개혁안
  • 모용복기자
‘소 키울 사람 없는’ 국정원 개혁안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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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선택의 상황에 직면한다. 만약 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선택은 아주 명확할 것이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 등을 확실히 구분할 수만 있다면 실수가 거의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전지(全知)적 능력을 지니지 못한 까닭에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더 나은 것을 택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타인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시카고대학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은 다양한 실험과 이론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해주는 방법으로 ‘넛지’(nudg)를 제시하고 있다. 즉 예상가능한 방향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넛지를 활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넛지의 원리를 개인의 행동범주에서 정치적 차원으로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국가나 정부가 국민을 위해 정책을 펼 때 여러가지 선택지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을 택하기 위해 발생 가능한 여러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후 정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런데 지난주 정부가 내놓은 국가정보원 개혁안은 이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발표시기의 문제다.
 지난달 29일 새벽, 75일간의 침묵을 깨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그것도 사정거리로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 15형 신형 미사일이다.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회 참석을 취소하면서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원유공급 중단 등 제재에 나설 것을 부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미사일 발사 도발 당일 트럼프 대통령과 40여분간 전화를 통해 공동대응을 협의했다.
 이렇듯 북한 미사일 도발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가 뒤숭숭하던 이날 국정원이 대공수사권 포기를 골자로 한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했다. 야당 의원들이 발끈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심지어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머리를 갸우뚱했다고 하니 국정원의 행보가 얼마나 엇박자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때가 안맞으면 실행에 옮겨선 안 된다. 급하다고 우물에서 숭늉을 찾을 수 없으며 바늘을 허리에 꿰어 쓸 수 없다.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두번째로 명칭변경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국정원은 18년 만에 조직 이름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국정원법 개정안에 명칭 변경도 포함돼 있다. 대외안보정보원을 영어로 옮기면 ‘International Security Intelligence Service’가 되며 영문 약자는 ‘ISIS’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단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바로 국제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와 같은 이름이다.
 국정원은 아직 명칭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CIA, FBI, M16, M15 등 전 세계 정보기관들이 영문 약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이러한 명칭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는 자체부터가 잘못된 선택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국정원법 개정안의 핵심이기도 한 대공수사권 포기다.
 개정안에는 대공(對共) 수사 관련 내용이 모두 삭제됐다. 즉 대공수사권을 경찰 등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고 북한과 외국 관련 정부 업무만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단체들은 ‘북한만 좋아할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으며 많은 대북전문가들도 대북 정보수집과 수사권을 양분한다면 대공수사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보수야당들도도 강력 반대에 나섰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하는 것”이라며 “안되면 국회에서 실력행사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도 “정말 소는 누가 키우나”며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면 간첩과 테러범은 누가 잡나”라고 비판했다.
 국정원 대선 댓글공작 사건,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등으로 과거 정권 국정원장 3명이 구속되거나 사법처리에 직면해 있는가 하면 전·현직 국정원 간부들이 줄줄이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등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정원의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또한 과도한 수사권 남용으로 인해 인권유린과 증거조작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어 국정원 개혁의 당위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북한이 ICBM을 쏘아올리는 등 안보가 풍전등화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도 없이 국정원이 덜컥 대공수사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너무나 위험스런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고,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후 내놓은 것인지 묻고 싶다. 비록 대선(大選) 공약이라 해도 국가안위와 관련된 사항은 아무리 추진에 신중을 기해도 부족하지가 않다. 대통령은 국가수호를 책임진 최고 지도자이지만 대선후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정원이 내놓은 개혁안은 여러 측면에서 사려 깊지 못한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 통과는 커녕 국민적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농후하다. 정부가 ‘넛지’를 하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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