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즐기면 고독사(孤獨死)를 면한다
  • 모용복기자
고독을 즐기면 고독사(孤獨死)를 면한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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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화장실 선반에 나란히 놓인 1인용 칫솔꽂이 세 개가 눈에 띈다. 동그랗고 앙증맞은 대리석에 칫솔 세 개가 수직으로 꽂혀 있는 모양이 이채롭다. 어제까지는 못 보던 물건이다. 뜬금없이 북한이 며칠 전 쏘아올린 미사일이 생각났다. 아내가 사다 놓아둔 것이 분명했다.
 요즘 아내가 김정은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로 느껴진 탓일까?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만큼 놀라울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칫솔통을 여러번 바꾸기는 했어도 식구 수대로 놓인 칫솔꽂이는 처음 보는 것이라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우리 세 식구 사이에 칫솔꽂이만큼 간극이 생기는 듯해 조금은 입맛이 씁쓸했다. 혼밥, 혼술족이 늘어난다더니 드디어 우리 가정에까지 1인 가구 풍조가 스며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100대 생활업종 통계’지표는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우리사회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이나 미용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포츠 관련 업종의 창업이 크게 늘어난 반면 호프전문점이나 예식장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해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애완동물용품점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동물병원도 덩달아 인기다. 또한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혼밥족들을 위한 시설도 급증했다. 반면 결혼인구가 줄면서 예식장이나 결혼상담소는 된서리를 맞았다.
 산부인과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3개 과목별 병·의원 중 유일하다. 결혼인구의 감소와 그로 인한 출산율 저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미있는 지표라 하겠다. 호프전문점과 간이주점도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주당들이 술을 안 마셔서 술집이 줄어들었다기보다 혼자서 음주를 즐기는 혼술족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인가구 증가가 우리사회 생활문화와 업종 생태계를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가 아닌 ‘혼자’인 시대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라는 말을 한국인처럼 많이 사용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부모, 우리 동네, 우리 회사, 우리나라…
 한국인들은 옛부터 혼자가 되는 것을 무지 싫어했다. 혼자라는 것은 곧 ‘사회적 낙오자’ 내지 ‘외톨이’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이상만 모이면 모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작은 친목모임부터 계모임, 동기회, 동창회, 사우회, 동호회 등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모임이 존재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존재감을 찾고 안도(安堵)하며 나아가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거나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까지 한다.

 만약 당신이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즐거운가?
 트렌치코트를 입은 신사가 고독을 음미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멋있게 보이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영화처럼 혼자서도 멋있게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면 혼자서도 멋있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세상에서 떨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고독을 맛보는 가운데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점차 성숙한 인간이 되어간다. 어쩌면 미래 사회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넘쳐날 지도 모를 일이다.
 멋있는 혼자가 되기 위해선 우리는 고독과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온전히 내면화시켰을 때 오래 잘 익은 포도주처럼 진한 향기를 풍기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고독과 고립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고독은 세상에 돌아오기 위해 혼자가 되는 여정(旅程)이다. 집단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다시 세상과 올바른 관계형성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독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반면에 고립은 세상과의 단절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고립은 사람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 버릴 뿐이다.
 우리는 고독을 즐길지언정 고립된 존재가 돼선 안된다. 혼밥, 혼술, 독신주의 풍조가 자칫 인간을 망망대해(茫茫大海) 속에 떠있는 외딴섬처럼 고립시키지나 않을까 염려되는 이유다.
 우리가 혼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혼자서 살아가더라도 마음과 귀는 세상을 향해 열어둬야 한다. 앞집이나 옆집에 혼자 사는 노인이 갑자기 보이지 않거나 우편물이 수거되지 않고 수 일째 쌓인다면 경비실에 물어보거나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보라. 전화 한 통 때리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비록 혼자 살아가면서 고독을 즐길 수는 없을지언정 최소한 고독사(孤獨死)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밤에는 책장 한 켠에서 먼지를 이고서 세월을 죽이고 있는 법정 스님의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꺼내들고 고독을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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