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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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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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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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살로메 작가

[경북도민일보] 잠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상주작가로 머물면서 도서 관련 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자투리 시간에는 개인 창작 활동도 한다.
시간 맞춰 출근하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오는 이가 있는데, 새로운 경험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아침마다 평온한 활력이 솟는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면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쉬운데다 하루를 마디게 활용할 수 있어 삼십 분 정도 일찍 집을 나서는 편이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분이 미화원 여사님이다.
도서관에서 사귄 가장 매력적인 분 중의 한 분이다.
고희를 훌쩍 넘긴 연세인데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에너지가 넘치고 유쾌한 분이다.
어찌나 열심히 쓸고 닦으시는지 금세 청소를 끝낸 자리는 지나가기가 미안할 정도이다.
여사님이 내 공간을 청소할 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거나 바쁘지 않으면 나도 곁들인다. 여사님 노고에 대한 내 나름의 감사 표현이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도 이른 시간에 도서관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려는데 여사님이 “안 돼!”하며 가로막았다.
여사님은 바닥에 락스를 뿌린 채 청소 중이었다.
출근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으니 그때까지 마무리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내가 그곳을 밟게 생겼으니 당황하신 것이다.
어쨌든 여사님의 경고(?) 덕에 나는 신발에 락스 자국을 묻히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해갈 수 있었다.
금세 그 사실을 잊은 채 찻물을 받기 위해 정수기로 향했다. 그런데 정수기 위에 메모가 곁들인 음료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정갈한 글씨의 메모지는 여사님을 위한 것이었다.

“여사님, 제가 생각이 짧아 아침 일찍 오셔서 고생하신 작업을 망쳐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장문의 메모였다.
얼핏 봐도 따스한 내용이기에 얼른 사진 한 컷을 찍어 두었다.
메모를 접수한 여사님의 전언에 의하면, 열람실 문 열기 전에 도서관에 오는 젊은 여성이 있는데 시간을 아끼려고 일찍 와서 복도에서 공부하다가 문이 열리면 입실한다고 했다. 여사님이 뿌려놓은 락스를 모르고 밟았고, 여사님의 노고에 재를 뿌린 것 같아 미안함에 메모와 음료를 남겼다.
락스를 밟은 일은 사소한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에만 그치지 않고 바쁜 시간을 쪼개 정성 깃든 메모까지 첨부한 것이다.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여전히 열람실 문은 열리기 전이고 메모를 남긴 주인공은 복도 모서리 자리에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 얼른 차 한 잔을 놓고 돌아섰다.
방해가 될까 봐 말은 건네지 못했다.
원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보아 전문직 자격을 위한 수험생이 아닐까 싶었다.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꼭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몹시 추운 다음날, 변함없이 복도 그 자리에는 숨은 듯 조용히 책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종이컵에다 차 한 잔을 따라 그녀 앞에 놓았다. 고맙다고 수줍게 말하는 그녀가 수험생이라면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어떤 시험이든 무슨 자격이든 원하는 바를 이루어도 그녀 같은 사람이라면 소박하고 건실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감이야말로 사회를 움직이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므로.
‘사소한 마음결 덕에 일할 맛 난다’는 여사님의 미소가 그녀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 
여전히 여사님은 누구보다 먼저 나와 고요한 도서관 바닥에 밀대를 밀고, 그녀는 구석진 복도에서 열람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책에다 머리를 맞댄다.
그들과 함께 조금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는 가만 찻물을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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