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추악한 ‘옆자리’
  • 모용복기자
권력의 추악한 ‘옆자리’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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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우리 속담에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괜히 나쁜 놈 옆에 앉았다가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우리 문단에서 한 여류시인이 이런 일을 당했다고 폭로해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것도 다름아닌 성추문이다. 그녀는 20년 넘게 내 책꽃이에 자리잡고 있는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쓴 최영미 시인이다. 서른 초반에 시집을 사서 그동안 너댓번 이사를 하는 동안에 많은 책을 버리고 또 사서 서재를 채우기를 반복했지만 아직까지 용케 살아 남았다. 아마도 서른 초반이라는 젊은 시절 읽고 느낀 감흥이 적지 않았던 까닭이리라.
 그런 최 시인이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에 발표한 시 ‘괴물’과 관련해 한 인터뷰 내용이 문학계를 넘어 우리사회 전반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상의가 구겨졌다.’
 시 ‘괴물’ 앞부분에 등장하는 En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급 시인이다. 문화계를 넘어 정치인, 언론인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옆자리에 한 번 앉아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최 시인의 지인인 K시인은 그의 옆에 앉지 말라고 충고한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최 시인이 방송에서 “그 원로시인은 상습범이며, 성희롱 피해자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폭로한대로 En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았음을 K시인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K시인을 비롯한 누구도 En의 추한 행동에 대해 반발하거나 들추기를 꺼렸다. 왜나하면 그는 문단의 권력이므로. 매년 ‘노털상(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그는 문화계를 넘어 우리사회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자칫 그에게 밉보였다간 언제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지 모른다. 그래서 ‘똥물’이라고 씹어대던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어 버렸던 것이다.
 최 시인도 그 때 남들처럼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더라면 한 때 시집 한 권이 50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가 생활보조금을 받는 빈곤층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는 “이 교활한 늙은이야!”하고 소리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그녀는 권력의 시혜(施惠)는커녕 가장자리로 끝없이 밀려나야 했던 것은 아닐까.

 최 시인의 ‘Me too’로 인해 그동안 한국문학의 큰 산으로 숭앙받던 거물이 ‘괴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En이 정말 노털상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면/이 나라를 떠나야지’하는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될 것 같다. 나도 십 여 년 전부터 매년 노벨상 수상 시즌이 되면 ‘이번에는 혹시’라는 기대감을 갖고 편집국에서 대기하던 수고를 올해부터는 덜 수 있게 될 지 모르겠다.
 최 시인의 폭로에 앞서 현직에 있는 서지현 검사가 오래 전 같은 검사로부터 성추행 당한 사실을 고발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다름 아닌 안태근 전 검사다. 그는 ‘우병우 라인’으로 불리는 인물로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수사에서 우 전 수석과 1000여 차례나 통화한 기록이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으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노회찬 의원의 질의에 불성실한 태도로 답변해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서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과 방송 인터뷰에 의하면 그녀는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그것도 대낮에 당시 법무부 간부였던 안태근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바로 옆에 법무부 장관이 앉아있는데도 안태근은 옆자리에 앉은 서 검사의 허리를 감싸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히 오랜시간 저질렀다. 서 검사가 그 당시에는 장관도 있는 자리라 대놓고 항의를 못했던 것은 당연하다. 이후 안 전 검사로부터 사과요구를 했다가 오히려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 전 검사는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사실관계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의 전매특허인 것 같다. 그런 기억력으로 명문대를 나오고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니 억세게 운이 좋은 남자라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그 운도 En의 껍데기가 벗겨지듯 종을 칠 날이 머지 않을 것 같다.
 En과 안 같은 권력자들은 여자는 마주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옆에 끼고 즐기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는 고상한 척, 근엄한 척 하지만 옆자리는 항상 구린내가 난다.
 문학은 글로써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정신의 고향이며, 검찰은 검(劍)으로 정의를 바로세워 사회를 정화시키는 법의 보루(堡壘)다. 글과 검이 바로서야 사회가 바로선다. 사회를 지탱하는 양 축의 옆구리가 이만큼 썩었다면 대한민국號의 미래는 암담하다. 가장 깨끗해야 할 글과 검이 이럴진대 다른 곳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Me too’ 운동이 우리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는 마중물이 돼 오랫동안 권력의 옆구리에 고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더러운 물이 정화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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