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발걸음… 누군가에겐 한 권의 책이 되길”
  • 이경관기자
“내 청춘의 발걸음… 누군가에겐 한 권의 책이 되길”
  • 이경관기자
  • 승인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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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 작가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이경관 기자의 문화피플

▲ 오성은 작가의 ‘여행의 재료들’, 호밀밭, 182쪽.

 “이 여행의 마침표가 찾아올 때에는, 가난한 내 청춘의 발걸음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나는 누군가의 여행지가 되고 싶다.”(46쪽)
 수많은 언어가 길 위에 흩어진다.
 언어들의 그 산책은 ‘여행’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여 우리 모두의 추억 속에 자리한다.
 자신의 청춘의 발걸음이 한 권의 책이 되기를.
 그 책과 책이 모여 누군가의 여행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오성은<사진> 작가.
 오 작가는 최근 청춘의 여정을 노래한 책 ‘여행의 재료들’을 출간했다.
 최근 오성은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두 번째 책 ‘여행의 재료들’ 출간 소감은.
 ‘여행의 재료들’은 특별한 관광지가 아닌 낯선 도시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방황의 흔적이다.
 길 위에서 저는 더없는 기쁨을 맛보았고 이유 없이 아픈 날 많았다.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하고 후회하다 오래도록 제자리에 머물렀다.
 휘몰아치던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어 부끄럽다.
 내가 다닌 도시들의 절반도 글로 쓰지 못했는데 벌써 책으로 묶여 감사한 마음이다.
 
 -이번 책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개인적으로는 긴 강을 건너기 위해 징검다리로 놓은 돌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첫 책을 낸 지 3년 만에 나온 책이기에 그만큼의 성긴 시간이 있었다.
 이제 두 번째 돌을 내려놓았는데 조금씩 강 건너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아직 강가에 머무는 수준인데도 물살은 점점 거세어진다.
 
 -다양한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에게 여행이란.
 여행을 떠나면 사사로운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근래에 가지고 있던 집착, 소유, 욕망을 되새겨보고 제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겪은 기쁨과 환희가 객관적인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숨겨뒀던 감정의 음표를 꺼내어 연주하는 일이라고 할까.
 한편으로 나에게 책과 여행은 같은 문맥이다.
 한 권의 책을 고르는 것은 새로운 여행지를 선정하는 일과 같다.
 익숙한 여행지를 찾는 것은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는 일이다.
 
 -작가 스스로의 여행법이 있다면.
 짧은 여행은 나름의 재미난 맛이 있지만 좀처럼 허기가 빨리 진다.
 라면을 먹은 기분이라고 할까.
 반면 신선한 재료를 선택하고, 레시피를 알아본 후, 도마 위에서 정성어린 칼질을 하고, 적당한 양념과 정확한 불의 세기로 맛을 낸다면 훌륭한 요리가 될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재료 선택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기란 어렵지 않지만 본인만의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여행도 연구하고 발명하고 발견해야만 하는 영역입니다.
 단, 오버 쿠킹만은 피하시길. 타버린 음식보다 해로운 건 없다.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호주에서 장기간 체류하던 중 가구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신체검사 항목에 마약 검사가 있었다.
 마약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검사를 하는 동안 미모의 금발 여성의 감시 아래에 소변을 봐야하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긴장해서는 받고 있던 소변 통을 쏟아버렸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제가 쏟은 소변을 모두 닦아내고서야 검사를 끝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경험을 들자면 한국어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일이다.
 영어실력이 좋지 않아 칠판 앞에서는 좀처럼 학생들을 집중시키기 힘이 들었다.
 그림도 그리고, 술래잡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가며 수업에 임했다.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문법의 문제가 아닌 걸 알았다.
 마음의 교감과 사랑이 서로에게는 큰 배움의 과정이었다.
 
 -책 속에서 수많은 경계에 선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어서였을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 좀 더 쉬어질 줄만 알았는데, 자꾸만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21쪽)
 첫 책으로 ‘바다소년의 포구 이야기’를 냈다.
 그 책을 낼 때만 해도 이미 서른이 지난 나이였다.
 소년은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소년으로 향하는 과정은 특별하다.
 영원히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화학적 자극을 저는 청춘이라 부르고 싶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청춘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통기타를 들고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청춘이라 하고 싶다.
 
 -영화와 소설, 음악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의 예술적 고향은 어디인가. 또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기타는 어제를 노래하고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그리워했다. 손은 느려지고 점점 여려지지만, 힘을 잃지 않는 2분음표가 되어 오늘을 노래하고 있다.”(168쪽)
 보이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것, 만져지는, 맛볼 수 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훌륭한 재료가 된다.
 여행의 재료들은 결국 영감의 재료들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즉 독서는 한 공간으로의 진입이다. 그건 마치 여행과도 같다.”(41쪽)
 소설을 쓰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 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향수를 시향지에 적셔 나눠준 이후 연주를 듣게 하는 피아니스트를 만난 적이 있다.
 감각의 사고를 확장시킨 멋진 기획이었다.
 내가 쓰는 글이 텍스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길 위에서 써내려간 글을 음악으로 만들며 텍스트의 바깥을 꿈꿔볼 작정이다.
 물론 적당한 시기가 오면 다시 떠날 것이다.
 ‘잠시만 이곳에’ 머무는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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