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가려면 고전을 배워야 한다고?
  • 경북도민일보
카이스트 가려면 고전을 배워야 한다고?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8.0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북도민일보]  며칠 전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다. “여보, 요즘 애들이 고전을 배우는 게 유행인 거 알아요?”
 나는 바쁘기도 하고 귓전으로 들어서인지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안 가 그냥 넘어가려다 ‘고전(古典)’이란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아내를 돌아보며 물었다.
 “고전은 왜?”
 “고전을 배워야 아이들이 똑똑해진대요. 그래서 요즘 고전을 가르치는 학원이 많이 생겼대요”
 “에이! 그런 말이 어딨어? 본래부터 똑똑한 애들이 고전을 잘 하는 것이겠지”
 “아니에요. 내가 아는 어떤 엄마도 애를 과학고, 카이스트 보내려고 고전을 가르친대요.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봐 자기도 공부하고 있구요”
 나는 과학고, 카이스트란 말에 처음에 ‘혹시나’하는 기대감이 ‘역시나’로 바뀌고 말았다.
 “역시 우리나라 부모들은 못말려. 그런데 고전을 배운다고 어떻게 카이스트를 갈 수 있어?”
 “인성이 바르게 되면 다른 공부도 자연히 잘하게 된다나 봐요. 요즘은 있는 집 아이들이 인성교육도 많이 받아 공부를 잘 하고 예의도 더 바르다고 그러잖아요”
 아내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성 싶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인성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그것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 되는 현실이 입맛을 씁쓸하게 했다. 학원, 과외도 모자라 이제 공자, 맹자에게까지 대학을 부탁하는 우리 부모들의 발상(發想)과 열정이 놀라울 뿐이다.

 내가 고전이란 말에 관심을 보인 것은 2030때 얘기지만 고전산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땄기 때문이다. 한문소설, 한글소설, 신화, 전설, 민담, 수필 등 시가(詩歌)를 제외한 분야를 다루는데 나는 신화와 민담에 관심이 있었다.
 아내가 말한 고전은 위에서 열거한 우리 옛 문학작품이 아닌 중국의 사서오경일 것이라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군신화, 금오신화, 홍길동전, 구운몽과 같은 우리 고전작품들은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우게 되며 일류대학을 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그것만 먼저 학원에서 배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오신화와 홍길동전을 읽었다고 인성이 크게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중국의 고전 속으로 한 발 내딛어 보자.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 할 수 있는 사서(四書) 중 으뜸인 논어의 첫 구절이다. 나는 여기 두 문장에 공자의 사상이 농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부모들은 ‘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구절을 제일 좋아할 성 싶다. 자식이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운 것을 복습해 자기 것으로 만드니 그 기쁨이 배우는 자식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 구절에서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는’ 일이 즐겁기만 한 일인지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친구가 찾아오면 공부에 방해가 될 뿐더러 혹시 우리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까. 어려운 수학문제라도 가르쳐줄 친구라면 몰라도.
 공자는 왜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다고 했을까? 공자가 말한 벗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얘기하는 것일까? 아마 그랬다면 공자는 후세에 길이 성현으로 추앙받지 못했을 것이다. 공자의 인(仁) 사상의 요체는 여기에 있다.
 인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보통 어떤 사람이 ‘어질다’라고 말할 때 이때 어질다는 ‘심성이 착하고 덕(德)이 높음’을 뜻한다. 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선(善)으로서 행(行)의 실천을 중시한다. “인이 무엇입니까?”하고 제자가 물었을 때, 공자가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學而時習) 하는 것이다. 인 사상의 본질은 그 개념보다 실천에 있다. 공자는 인의 실천 방법으로서 충(忠)과 서(恕)를 말했다. 충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며 서는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고전은 이러한 성현들의 사상과 가르침을 배워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인성교육보다 남보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격도야라는 고전의 목적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수단으로 바꿔놓고 만 것이다. “그렇더라도 고전을 배우게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고전을 조금이라도 배우게 하는 것이 인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학원에다 미술학원, 태권도학원 등 온갖 학원들로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이제 고전학원까지 다니게 해야 한다면 정말로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전은 학원에서 몇 시간 배운다고 익혀지는 것이 아니다. 생활 자체가 고전이 돼야 하며 그 중 부모가 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엄마는 집에서 독서는 커녕 매일 텔레비전 드라마만 시청하고 아빠는 걸핏하면 남을 비방하거나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가족에게 미루는 일을 밥 먹듯 한다면 아이가 학원에서 공자의 문자(文字)를 배워본들 그것이 온전히 체득될 리 만무하다. 고전의 향기는 학원이 아닌 생활 속에서 우러나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서 고전을 배우는 즐거움을 빼앗지 말자. 공부가 즐거워야 성현의 가르침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