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리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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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리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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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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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경찰서 정선관 경위

[경북도민일보]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피해자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무언가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하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 특히 성(性)과 관련된 경우엔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성폭력 아픔을 겪고 있는 피해자는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며 폭로한 뒤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정무비서 김지은 씨가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2차 피해를 겪지 않게 도와달라며 쓴 자필 손편지가 눈길을 끈다. 김씨는 전국성폭력상담협의회를 통해 공개한 편지에서 “저를 비롯한 제 가족은 어느 특정 세력에 속해 있지 않다”며 “더이상 악의적인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또 “저에 대해 만들어지는 거짓 이야기들 모두 듣고 있다.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누가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면서“예상했던 일들이지만 너무 힘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저에 관한 거짓 이야기들은 수사를 통해 충분히 바로 잡힐 것들이기에 두렵지 않다”면서 “다만 제 가족들에 대한 허위 정보는 만들지도, 유통하지도 말아 주시길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김씨의 경우처럼 최근 미투운동이 확산하면서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먼저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은 가해자의 역고소와 수사기관의 조사방식이다.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를 내어 미투를 외쳤어도 수사과정에서 피해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피해자에 대한 진술 강요,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질문, 신상 노출, 가해자와의 대질심문 등으로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가해자들은 이러한 점을 악용해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역고소를 무분별하게 남발하고 있다.

 최근 연예계에서 미투운동으로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음악인 남궁연씨가 폭로 여성들을 상대로 법적 강경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남 씨는 추가 폭로가 이어지자 지금은 침묵을 하고 있는 상태다. 만약 추가 폭로자가 없었다면 먼저 미투운동에 나섰던 여성들이 법적공방에 휘말려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온라인상에서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음해성 인신공격이다. “악의적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게 도와 달라”고 호소한 김지은씨의 사례처럼 SNS를 통해 피해 당사자는 물론 가족에 대한 허위 정보가 마구 퍼져 피해자의 악의적인 무고에 의해 가해자가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둔갑하기도 한다. 성추행 의혹에 대한 부담으로 배우 조민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온라인 상에서 미투 운동이 ‘마녀사냥’으로 조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글이 쇄도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처럼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해지자 12개 관계부처로 구성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근절추진협의회는 지난 8일 피해자에 대한 악성 댓글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구속수사 하는 등 엄정 대응하고, 가해자 역고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의 폭로에 대해서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않는 쪽으로 법 해석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로만 방지될 수는 없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인터넷을 하며 자유롭게 의견표현을 할 수 있는 세계 최고 IT강국에서 법으로서 이를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성폭력 등 성범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왜곡된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선 이러한 폐단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피해자를 의심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회적인 통념이 가장 큰 문제다.
 2차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는 그릇된 시민의식이 빨리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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