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회초리, 의회의 홍두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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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회초리, 의회의 홍두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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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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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상(賞)이란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하거나 칭찬할 만한 일을 했을 때 주는 것으로서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최근 대구지역 한 구의회가 시민단체가 수여하고자 하는 상을 결단코 받지 않겠다고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다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해 성평등 실현을 저해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성평등 걸림돌상’ 6곳을 발표했다. 영광의 수상 기업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한샘, 면접순위를 조작해 여성입직을 봉쇄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여성혐오 콘텐츠를 조장하고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TV, 이주여성 친족 성폭력사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선고한 제주지방법원 1심 재판부, 간호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대구 가톨릭병원, 한림대 성심병원,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미온적 대처로 2차 피해를 야기한 대구은행이 그들이다.
 이에 발맞춰 30여개 대구경북 여성단체들로 구성된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대구여성대회조직위원회도 지난 12일 대구지역 두 곳 수성구의회와 수성경찰서에 성평등 걸림돌상을 수여했다.
 조직위는 먼저 수성구의회를 찾아 이 상을 전달하려 했지만 의회는 직원들을 동원해 입구에서부터 여성단체의 출입을 막았으며 조직위가 상만 전달하고 가겠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성단체 회원들은 하는 수 없이 의원들을 대표해 의장에게 상을 전달하려 했지만 의장은 자리를 비웠고 비서실 직원들도 대리 수상을 거부해 하는 수 없이 의장실 입구에 상을 놓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직위가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수성경찰서였다. 회원들은 청사 입구에서 ‘성폭력 2차 가해자’를 나타내는 팻말에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류영만 서장에게 성평등 걸림돌상을 수여했다. 상을 받은 류 서장은 “이 상을 국민이 주는 회초리라 생각하고 따끔하게 받아들겠다”고 밝힌 뒤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수성구의회는 지난해 11월 제주도 연수 때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이던 모 의원이 동료인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을 성추행한 사건에 대해 윤리특위가 제명안을 상정했으나 본회의 투표에서 찬반 각각 8표로 부결시킨 바 있다. 이 가해 의원은 어떤 징계도 받지 않고 현직을 유지 중이다. 이로 인해 여성단체로부터 성평등 걸림돌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지방의원 제명 징계는 재적 의원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수성구의회의 결정은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다. 전체 의원 중 절반에 가까운 9명의 의원이 가해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까닭이다. 또한 의원들이 윤리특별위원회의 제명 결정을 걷어찬 것은 민의를 안중에 두지 않은 몰염치한 처사로서 정치적인 이해(利害)를 인권보다 앞세운 결과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시민, 여성단체, 언론 등 각계각층에서 비난여론이 쏟아지는데도 수성구의회가 아직까지 자신들의 처사에 대해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고도 그들이 주민이 뽑은 민의(民意)의 대변자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방의회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의 대의기구로서 주민의 의사(意思)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방의원들은 주민대표로서 당리당략을 떠나 주민들의 여론을 최대한 정책에 반영하고 권익실현에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수성구의회의 경우처럼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의원들이 민의에는 눈을 감고 정략에 따라 행동하는 등 주민 여망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최근 들어 지방의원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미투’ 운동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와 경북지역 곳곳에서도 성폭력 피해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성(性)에 대한 인식전환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러한 때에 여성단체들이 여성의 날을 맞아 성평등 실현에 미흡한 공공기관에 대해 상을 수여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시의적절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에 대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은 국민의 회초리를 겸허히 받아들인 반면에 주민 대표기관인 의회는 회초리를 부러뜨리고 말았으니 이는 국민을 우습게 여긴 까닭이 아니고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민주주의의 보루(堡壘)는 지방자치다. 지방자치가 성숙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기관의 독주를 감시하며 주민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는 지방의회가 바로서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인 이번 6·13지방선거에서는 국민 회초리를 우습게 여기는 선량(選良)들에게 ‘홍두깨’의 묵직한 아픔을 깨닫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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