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촛불혁명 미몽(迷夢)의 열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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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촛불혁명 미몽(迷夢)의 열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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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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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촛불혁명’을 촉발시킨 장본인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형이 내려졌다. 60대 중반 고령의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형(刑)이다.
 법원은 지난 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총 18가지 혐의 중 16가지가 유죄로 인정됐다. 이로써 지난 2016년 10월 최순실 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 발견으로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이 일단락됐다.
 ‘촛불혁명’은 국민이 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濫用)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타도하기 위해 연 인원 1000만 명 이상이 참여해 부정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문재인정부를 탄생시킨 시민항쟁이었다.
 촛불집회 시작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시위의 하나로 미국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효선·미선 양을 추모하기 위해 처음 열렸다. 이후 2004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그리고 2009년 용산 철거민 집단 참사 추모 집회 등에 촛불이 등장했다. 집시법의 ‘일몰 후 옥외 집회 또는 시위 금지’ 규정에 따라 문화제 형태로 이뤄지며 비록 비폭력적이긴 하지만 시각적 효과가 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장점이 있다.
 촛불집회가 비록 해외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전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별다른 불상사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된 데 대해 전 세계가 경이로움과 감탄사를 금치 못했다. 세계 각국 언론매체와 학자들은 ‘한국의 촛불집회를 배워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 한민족 특유의 이러한 촛불집회를 가능케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멀리는 숱한 외세의 침략과 권력자들의 수탈 속에서도 엄동설한(嚴冬雪寒) 대죽처럼 의기를 굽히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내면화했던 선조들의 저항정신이 있었으며 가깝게는 군사독재정권을 종식시킨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집회의 규모와 성격, 형태 등을 고려해 볼 때 촛불혁명은 3·1운동과 많이 닮아 있다. 주지하다시피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 저항해 한민족이 분기탱천해 떨쳐 일어난 사상 최대 규모의 저항운동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독립운동이었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수탈, 폭압적인 식민지배에 분노한 각계각층 국민들이 전국에 걸쳐 일제에 항거했다. 시위자들은 일본군의 총검과 가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은 물론이다. 3·1운동은 일제가 물리적 폭압만으로는 한민족의 저항정신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식민정책을 전환한 계기를 만들었으며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등 세계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일본에서는 수천에서 수만 명의 시위자들이 사학 스캔들에 연루된 아베 신조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연일 총리 관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집회는 어딘가 낯이 익다. 밤이 되면 일제히 LED(발광다이오드) 촛불과 플레시를 켠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국정농단으로 인한 부패정권을 무너뜨린 우리의 촛불혁명과 판박이다. 비록 규모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정권교체를 불러온 한국의 촛불이 일본에도 상륙한 것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한국을 본받아 힘을 내자” “박근혜 퇴진운동을 배우자”는 구호를 외치며 아베 총리에 대해 퇴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우익단체에서는 ‘한국 따라하기’라며 한국의 촛불혁명이 일본사회를 뒤흔들지는 않을까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며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에 항거한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의 촛불이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상륙해 부패정권에 대한 저항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니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사회적 운동은 자신들보다 정치적 발전이나 국민의식 수준이 뒤쳐진 국가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일지 몰라도 적어도 국민의식 수준은 우리보다 한참 뒤떨어져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보수적 국민성향을 악용해 아베 총리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정당화하는 교육을 강화하고 도쿄 중심지에 독도기념관을 설치하는 등 우경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는 실패로 귀결될 것은 분명하다. 촛불 영향을 받은 일본 국민들이 서서히 미몽(迷夢)에서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총칼로써 3·1운동을 탄압했지만 우리의 촛불은 그들의 정치·사회적 발전을 촉발시키는 부싯돌이 되고 있다. 촛불에서 한민족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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