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家)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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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家)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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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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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부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우리 설화에 등장하는 형제(兄弟)들의 모습은 우애가 좋거나(줄지 않는 볏짚) 형이 착하고 동생이 못되거나(우애 좋은 형제 이야기) 반대로 형이 못되고 동생이 착한 경우(흥부와 놀부)가 대부분이다. 형제가 모두 악인(惡人)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를 봐도 형제들 중 한 명쯤은 꼭 착한 사람이 나온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선인(善人)에 의해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기를 희구하는 사람들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우리의 통념 속에 각인돼 온 형제의 모습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 바로 재벌이다. 이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온갖 특권을 누리며 살다보니 타인과 어울려 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도 잊어 버렸다. 요즘 재벌 3세들이 내는 불협화음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회의도중 자신의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물컵을 집어던진 이른바 ‘물컵 갑질’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검찰 고발까지 이어지면서 사건이 불거지자 그동안 조 전무의 갑질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 전무의 ‘물컵 갑질’도 문제이려니와 국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이번 일이 언니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갑질’의 데자뷰라는 점에서다.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은 대한항공 부사장 시절인 지난 2014년 12월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땅콩을 봉지 째 갖다준 승무원의 서비스에 분노해 승무원을 폭행하고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회항시켜 승무원인 사무장을 내리게 하는 등 갑질을 저질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조 사장은 이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수감 되는 등 3년여 간의 자숙기간을 거친 뒤 지난달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에 선임돼 회사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니인 조 사장이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이번엔 동생이 갑질을 벌여 ‘갑질 자매’라는 국민적 지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이번 일은 충분히 예견됐던 바다. 당시 ‘땅콩 회항’사건으로 조 사장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을 때 조 전무는 ‘반드시 복수하겠어’란 문자 메시지를 언니에게 보낸 것으로 검찰조사에서 밝혀졌다. 그가 어떤 사람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생각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조 사장 갑질과 직접 연류된 승무원들과 나아가 그들의 특권에 도전하거나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흙수저’들일 것이다. 이번 조 전무의 ‘물컵 갑질’도 이러한 재벌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재벌 3세들의 눈물겨운 ‘형제애’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일반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분명히 딴 세상 사람들이다. 언니가 갑질로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구속까지 됐으면 동생은 몸조심 하는 게 당연지사다. 그것도 언니가 경영에 복귀한 지 열흘 만에 말이다.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들의 행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UC 버클리대의 심리학 교수인 대처 켈트너(Dacher Keltner) 박사는 “권력자가 되면 보다 충동적이고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즉 공감능력이 부족해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TV드라마나 영화에서 슬픈 장면이 나올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바로 공감이라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켈트너 교수에 의하면 권력자나 부자들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공유하는 시뮬레이션이 멈춰 이로 인해 심각한 ‘공감능력 결핍증’이 초래된다.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느끼는 공감능력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국가 지도자나 기업 CEO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공감능력이다. 타인과 공감하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권력자나 기업 CEO를 상상할 수 있는가. 지난 정권 ‘불통 대통령’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진 불행한 기억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조씨 자매의 갑질도 타인과 공감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언니를 위해 복수를 하겠다’라고 한 것처럼 일반 국민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형제애’로 표출된 것이다. 그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은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며 세상과 부딪히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데 이들 재벌가 3세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크면서 어릴 때부터 온갖 특혜를 누리며 살다보니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언행이 타인과 사회에 어떻게 수용되고 영향을 미치는 지 인식할 수 없게 됐다.
 창업주와 뒤이은 후계자들이 세상과의 담을 높이 쌓아올리고 자신들 만의 성(城)을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의 자녀들이 이제 경영의 전면에 등장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불안한 경영능력과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공감능력 부족 때문에 재벌 3세들의 갑질과 일탈행위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이 봉건왕조 시대도 아니고 재벌들의 제왕적 기업경영과 대물림은 이제 끝나야 한다. 기업은 주주들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단순히 총수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가 되는 것이 아닌 대부분의 선진국들처럼 공정한 경쟁을 통해 후계자가 선정되는 풍조가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 과거엔 재벌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우리 경제,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전락했다. 재벌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다.
 그들이 그동안 우리사회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높이 쌓아올린 담과 두터운 철문을 허물고 사회로 나오지 않는 이상 재벌 3세들에 의한 사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 자명하다. 경영과 공감능력이 없는 세습 경영인들을 하루 빨리 퇴출시키고 기업을 개방화하는 것만이 기업이 살고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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