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버드대의 두 총장, 엘리엇과 서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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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하버드대의 두 총장, 엘리엇과 서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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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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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경북도민일보 = 뉴스1] 시대적 상황의 차이는 있지만 하버드대의 두 총장을 비교해 보면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된다.
21대 찰스 엘리엇 총장은 1869년부터 40년간 재직한 최장수 총장이다.
취임 당시 평범했던 하버드를 세계적인 대학교로 변모시킨 위대한 총장이다. 엘리엇은 하버드 졸업 후에 화학부 정교수가 되는데 실패하고 유럽으로 떠난다. 유럽에서 엘리엇은 유럽대학의 교육 시스템을 깊이 연구했다. 여러 학교를 방문하면서 커리큘럼, 교수법, 교육의 국가적 의미를 탐구하고 특히 교육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다. 독일에서는 대학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발견이 독일의 화학산업에 미친 영향에 깊은 인상을 받아 교육과 산업 발달의 관계를 공부했다. 엘리엇은 당시 신흥국가였던 미국이 학문과 산업, 통상을 통해 발전할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당시 미국 대학들은 급속한 산업화를 교육과 지식으로 뒷받침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성직자들이 고전 위주로 수업을 했고 과학이나 실용 지식은 가르치지 않았다. 일부 대학이 서서히 개혁을 통해 커리큘럼을 개편했고 고전의 비중을 줄여나갔다. 1865년에 MIT가 설립되어서 분위기를 많이 바꾸었다. 그러나 하버드는 쇠락해 가고 있었다. 엘리엇은 이런 분위기에서 MIT 교수로 귀국했다.
엘리엇은 1869년 초에 미국의 여론주도층이 애독하는 월간지‘애틀랜틱’에 자신의 대학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신교육’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는데 하버드 이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사업가 동문들이 그 글에 크게 공감했고 이사회가 35세의 엘리엇을 총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엘리엇은 재임 기간 동안 대학교육을 혁명적으로 변모시켰다. 하버드는 제도적, 공간적으로 많은 발전적 변화를 겪었다. 대학 캠퍼스가 탄생했고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들을 선택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커리큘럼을 개편하고 확대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가능성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고 전문화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엄격한 학업 평가와 학점 부여 제도가 만들어졌다.
또, 하버드는 입학시험제도를 도입해서 신입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고등학교 교육을 변모시키게 된다. 동부지역의 명문사립고등학교들이 대부분 엘리엇 재임기간 동안에 설립되었다. 공립학교들도 하버드의 엄격한 선발기준을 따라가기 위해 대대적으로 커리큘럼을 개편했다.
엘리엇은 교과서 같은 인물이었다. 총장으로 있으면서 미식축구를 학교에서 추방하려고 애썼다. 축구는 전략과 규칙이 전쟁과 똑같으며 규칙 위반이 불가피하고 강자가 약자를 당당하게 약탈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비판했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커브볼을 사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면서 하버드에서 권장할만한 행동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교수들의 불신임 결의로 총장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래리 서머스 27대 총장이다. 총장이 되기 전까지 서머스는 다양하고 화려한 이력으로 각광 받던 사람이었지만 그 재임 기간 내내 하버드는 이런 저런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열여섯 살에 MIT에 입학한 서머스는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스물여덟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된다. 하버드 역사상 최연소 정교수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까지 지냈다.
서머스는 총장이 되자마자 물의를 일으킨다. 랩 앨범을 발표한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해서 프린스턴으로 가게 만들고 자신이 총애하는 경제학 교수 한 사람의 소송에 연루되어 학교가 약 300억원의 화해금을 내게 했다.
2005년 초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저조한 이유가 사회화 과정이나 차별보다는 여성성 내재적인 것이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 발언은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서머스는 수차례 사과했다.
하버드 인문과학대학 교수진이 218대 185로 서머스 총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대학 이사회는 총장 지지성명을 발표했고 교수들과는 달리 학생들도 총장을 지지했다. 학교가 일대혼란에 빠졌다. 결국 서머스는 사퇴 발표를 하게 된다.
엘리엇 총장의 경우 평범한 개인 경력의 소유자였지만 나라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사람으로서 총장이 되었고 확고한 대학관을 특유의 절도있는 개성과 결합시켜 학교를 발전시켰다.
반면에 서머스 총장은 화려한 경력과 사회적 자산을 무기로 총장직을 합당한 예우를 받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하나의 ‘자리’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도 그런 점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몸에 밴 자신감에서 나온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본인에게나 대학에나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우리 대학들이 리더를 뽑을 때도 두 총장의 차이를 잘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두 총장의 장점을 합친 인물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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