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청년들이 떠난 어촌은 쓸쓸하다
  • 모용복기자
남해, 청년들이 떠난 어촌은 쓸쓸하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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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아직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월의 겨울 끝자락. 경남 남해군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여행이라고는 하나 왕복 6시간 이상을 고속도로에 바치고 잠자는 시간까지 하면 사실상 하루 남짓한 쑥스러운 여행길이다.
 포항에서 서너 시간 차를 달려 사천에 도착해 항구로 접어드니 웅장한 삼천포대교가 눈앞에 펼쳐졌다. 삼천포항과 남해군 창선면을 잇는 다리다. 드디어 목적지인 남해군의 지척에 도착한 것이다.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대교를 지나 구불구불한 해안선으로 접어드니 왼편으로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늘어선 죽방림의 행렬이 이채롭다. 내가 사는 동해안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죽방림 멸치쌈밥을 하는 식당에서 점심으로 멸치회를 주문하고 나니 주인 아주머니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포항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기는 경산이 고향이라며 반가운 체를 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처럼 객지에 온 사람들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쌉싸름한 멸치 맛을 입안에 머금은 채 해안길을 따라 수 십 분을 달리니 오른쪽 언덕배기 위로 어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마을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우리 식구가 묵을 남해군 삼동면에 있는 독일마을이다. 1960년대 간호사나 광부 등으로 독일에 파견됐던 동포들이 고국에 돌아와 고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성한 마을이다. 독일에서 직접 건축 재료를 수입해 전통 독일식 주택들을 지었으며 거리 곳곳에 독일식 맥주집이 즐비해 이국적인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요즘 탤런트 박원숙 씨의 카페가 텔레비전 프로에 소개돼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펜션은 마을 입구에서 왼편으로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차에서 짐을 내려 대충 정리를 끝내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깨끗한 거리와 양편으로 늘어선 서양식 음식점과 맥줏집, 그리고 독일식 주택들이 겨울 정취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낭만을 한껏 자아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거리와 음식점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 아무리 관광지라고는 하나 한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에 이토록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든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도보로 마을 정상에 있는 원예예술촌과 파독전시관까지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오니 펜션을 운영하는 60대 가량의 부부가 반갑게 맞는다. 펜션은 총 4실로서 우리식구 외에는 아직 묵는 가족이 없는지 부부는 한가해 보였다. 조금 쌀쌀한 날씨이긴 해도 아직 햇볕이 남아 있는 터라 잔디밭 마당에 놓여진 나무탁자에 걸터앉으니 바깥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다. 그는 몇 년 전까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퇴직을 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뿐만 아니라 이곳 숙박업소와 음식점을 운영하는 대부분이 객지 사람들이며 독일마을 거리에서 본 사람들도 모두가 관광객들이라고 말했다.

 “이곳 현지인들은 고기잡이 외에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젊은이들도 어부가 되기보다 더 쉽게 돈 버는 일을 찾아 도회지로 떠나고 여기에는 관광객들 외에는 청년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거예요”
 멸치회 식당 주인도 그렇게 말했었다.
 밤이 늦도록 꺼지지 않는 가로등과 거리의 불빛, 사람들의 재잘거림에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하고 다음날 일찍 남해대교를 향했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한 도로가 마을과 마을로 끝없이 이어지면서 절경을 연출했다. 계단식 밭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 내려 안으로 들어서니 밭에서 시금치를 캐는 할머니 몇 분이 보였다. 아내가 몇 마디 인사를 건넨 뒤 5000원 어치를 샀다. 우리 식구 가운데 시금치 반찬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굳이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아내의 마음 씀씀이는 알아줘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좋은 풍경과 평화로운 마을에 왜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이는지 답답하네요. 청년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고향을 지키면서 먹을 걱정, 아이교육 걱정을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굳이 도시로 떠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내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정말 그랬다. 아내의 말대로 관광객들 외에는 젊은 사람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청년들이 떠난 마을은 쓸쓸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있었다. 독일마을, 가천 다랭이마을, 양떼목장… 유명 관광지가 다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이다. 시간이 되면 떠나고 흩어지는 신기루일 뿐이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솟대처럼 영원히 이곳에 남아 남해를 품고 지켜나갈 젊은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아름답운 고향을 두고 어떻게 떠나갔을까?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마을은 온전히 남아 있을까? 아니 먼 후일에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런 상념들이 뇌리를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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