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교사들의 슬픈 자화상
  • 모용복기자
우리시대 교사들의 슬픈 자화상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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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오늘은 37번째 맞는 스승의 날이다.
1950년대 말 충남 강경여자고등학교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 단원들은 병환으로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방문해 정성껏 간호와 문병을 하고 퇴직한 은사들을 찾아가 은혜에 감사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것이 계기가 돼 1963년 들어 자신들의 활동을 공식화하기 위해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고 스승의 은혜를 가슴에 되새기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행사를 개최한 것이 스승의 날 시초이다. 그러다 1965년에는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하고 각급학교 및 교직단체가 주관이 돼 행사를 실시했다. 그 뒤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방침에 따라 한 때 폐지됐다 1982년에 부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승의 날은 스승을 공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해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교사들이 오히려 스승의 날을 꺼려하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는 현직 교사의 청원 글까지 올랐다고 하니 기이한 일이다.
이 교사는 청원 글에서 “교사를 스승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참고 견디라면서 ‘교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등 교사가 왜 이런 조롱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교권은 포상과 행사로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며, 교권추락을 수수방관하며 교사패싱으로 일관하는 분위기에서 교사들은 스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소명의식 투철한 교사로 당당히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스승이라는 멍에를 쓰고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살아가는 오늘날 대부분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권침해 상담건수는 총 508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2.5배나 급증했다. 교권침해 사례는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267건(52.6%)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학생에 의한 피해도 60건(11.8%)이나 됐다.
교육부 조사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발생한 교권침해 사건은 무려 1만5645건에 달하며 폭언과 욕설, 성희롱, 폭행,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등 유형도 다양하다. 이 같은 수치는 사건화 된 사례일 뿐 보고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교권침해 건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두 조사결과를 비교해 보면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연간 수 천 건에 달하는 교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교사들을 억압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외부에 자신의 고충을 드러내기를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에게 매를 맞거나 폭언·성희롱 등 수난을 겪는 교사얘기는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학부모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말만 듣고 무작정 학교에 찾아와 교사에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항의에 대한 답변이 불친절하다며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폭행을 가하는 등 교권침해 행위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그런데도 현행법 상으로는 이를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다. 2016년 시행된 교원지위법이 교권침해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미흡하다는 것은 교육계의 중론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사에 대한 폭행을 일반 폭행사범보다 가중 처벌하는 등 교권을 법으로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2014년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여교사를 넘어뜨리고 발길질을 한 학부모에게 법원이 징역 20년을 선고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최순실이 징역 20년을, 최근 살인사건 피해자가 현직 국회의원 친형이라 세간의 관심을 끈 아버지 살해범에게 징역 18년형이 선고된 것에 비춰보면 미국의 교사 폭행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엄중한지 잘 알 수 있다.
학부모가 자식 교육을 맡긴 교사에게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폭언을 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자행한다면 교사의 인격과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며 사명감을 갖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과 SNS의 확산으로 교사들은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여교사들은 퇴근해서도 집안일과 밀린 업무 등으로 밤늦게까지 쉴 틈이 없다. 이런 와중에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학부모 전화에 일일이 응대하는 통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처럼 저학년일수록 정도는 더 심하다. 혹시나 전화를 못 받을 경우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음날 학부모의 항의가 우려돼 밤이 늦더라도 전화를 하게 된다고 한다. 내용도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다툼’이나 ‘감기가 걸렸으니 내일 집에서 쉬겠다’는 등 다음날 얘기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들이 다반사다. 또한 오랜만에 가족들과 떠난 주말 여행지에서도 몇 시간이나 학부모의 민원성 항의전화에 시달리다 여행기분을 망친 교사의 얘기도 들린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식의 교육에 대해 담임교사와 상담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녀의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그에 대해 조금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근무시간이 아닌 심야나 휴일에도 교사에게 전화해 걸러지지 않은 온갖 말들을 쏟아내는 것은 교사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녀의 교육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급증에 걸린 부모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아이의 행동에 한 번이라도 부모가 아닌 교사 입장에서 응대해 보라. 아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가정에서는 부모가 제1의 교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카톡 등 SNS를 통한 학부모의 연락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교사들도 늘고 있다. 사소한 민원에서부터 숙제와 준비물에 대해 묻거나 심지어 교사의 사생활까지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낮과 밤 수시로 오는 학부모의 SNS에 교사들은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이 뿐만 아니다. 학부모들이 보내는 카톡 기프티콘이나 커피·케이크 등 상품권도 골칫거리다. 그 중에는 교사가 매번 거절을 하지만 계속해서 집요하게 보내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은 교사를 선생님이 아닌 친구처럼 대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교사에게는 크나큰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국·캐나다·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는 교사들이 근무시간 외에는 학부모의 질문에 응답해줄 의무가 없으며 학부모의 모든 질문은 반드시 근무시간에 학교를 통해 하게 돼 있다고 한다. 개인 연락처와 신상정보도 학부모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녀사랑이라는 미명(美名)하에 교사가 학부모에게 매를 맞는 사회, 학부모와 학생이 아무 거리낌 없이 교사에게 연락을 마구 해대고 막말을 하는 사회, 교사의 사생활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 인권사각지대에 처한 우리 교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과연 대한민국의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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