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따라 자연의 품속 꿀맛 같은 휴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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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따라 자연의 품속 꿀맛 같은 휴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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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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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복의 일본 규슈올레 탐방기 <1>
▲ 한다고원 가로 질러 나있는 들길을 걷는 일행들의 모습.

[경북도민일보] 지난달 20일,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일본 규슈현(縣)에 만들어진 ‘규슈 올레’를 탐방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여행을 떠난다는 게 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그런 느낌은 변하지 않는다. 금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김해공항에는 여행객들로 북적댄다.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여행객들이 날로 늘어나는 것 같아 헷갈리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를 만나고 짐을 부치고 아침밥을 챙겨 먹고도 집을 나선지 4시간 만에야 비행기에 탑승하니 여행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피곤해진다. 집 나서면 고생이라지만 이번 여행길은 고생을 자초하는 길이라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김해에서 후쿠오카(福岡)까지 이륙 후 비행시간이 불과 45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비행이 조금은 아쉽지만 새로운 경험을 위해 어쩔 수 없다.
이미 많이 알려 진대로 일본 규슈는 우리나라 여행객이 가장 많이 가는 지역으로 거리도 가까울 뿐더러 온천이 많아 더욱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요즈음은 단체관광보다 자유여행을 오는 여행객들이 많아 비행기표 구하기가 힘이 든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이 실감난다.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해외여행지가 그리 흔하지 않은데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풍부해 규슈는 한국관광객의 천국이라고도 한다.
‘규슈(九州)’는 일본열도 4개 섬(혼슈, 홋카이도, 시코쿠, 규슈)중 남서쪽에 위치한 7개현(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으로 구성되어 있고 풍부한 자연과 따듯한 기후를 자랑하며 일본 4대 경제권의 하나로 거대한 칼데라화산이 있어 ‘불의나라 규슈’라 불리며 온천이 많아 국내외 관광객이 사계절 끊이지 않는 곳이다.

▲ 한국인 탐방객을 위한 한글판 규슈올레 안내책자.

‘규슈올레’는 2011년 8월 (사)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와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업무제휴협약을 맺고 제주올레로부터 ‘규슈올레’라는 이름의 사용 허가와 올레코스 개발 컨설팅을 제공 받아 제주올레의 상징인 ‘간세’와 리본, 화살표 등을 규슈올레에 적용하도록 함으로서 우리나라 제주올레를 수입하여 만든 도보여행길이다.
‘간세’는 올레길 시작점과 걷는 구간에서 자주 만나는 파란색 말 모양 제주올레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제주 조랑말 이름에서 따 온 올레의 방향을 잡아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규슈올레’는 그동안 규슈지역 곳곳에 올레길을 만들어 현재 21개 코스가 개발되어 일본자국민들 뿐만 아니라 한국 탐방객들에게도 크게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코스마다 시작점과 끝나는 지점에는 기념스탬프를 찍을 수 있게 되어 있고 규슈올레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홍보책자와 코스별 지도가 포함된 볼거리와 먹거리 등을 소개하는 브로슈어가 있어 초심자들이라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특히 한국 탐방객들을 위한 한글판 안내책자 등이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게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후쿠오카공항을 출발한지 2시간여 만에 고코노에(九重)에 도착하여 생각보다 푸짐한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오후 2시, 규슈올레 첫 출발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리일행이 첫 번째 선택한 코스는 오이타(大分)현 중서부에 위치한 고코노에마치(九重町)에서 출발하여 쵸자바루(長者原)·다데와라습원(濕原)까지 가는 12.2㎞의 ‘고코노에·야마나미 코스’로 4시간에서 5시간 걸리는 길이다.

▲ 일본 제일의 도보전용 현수교인 ‘고코노에 꿈의 대현수교’에서 일행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이 코스의 대부분이 아소구주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해발 900m 고산 분지를 따라 걷는 길로 첫 출발점인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다리로는 길이와 높이 모두 일본 제일인 ‘고코노에 꿈의 대현수교(九重‘夢’大吊橋)’에서 시작한다. 표교 777m 높이에 만들어진 길이 390m, 높이 173m의 도보전용인 이 현수교는 순전히 관광목적으로  2006년 10월 완공한 다리로 입장료 500엔(우리 돈 5000원 상당)이나 받는다. 다리에서 구주연산(九州連山)을 360도 전망 할 수 있으며 다리 아래 두 곳의 인공폭포도 만들어 발아래 펼쳐지는 산과 계곡이 장관을 이룬다.

대현수교를 떠나 첫걸음을 떼며 만나는 마을이 우케노구치 온천마을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머물며 집필 활동을 펼치던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조용한 마을길에 핀 튤립이 붉은 입술을 요염하게 내보이며 탐방객들을 맞는다. 마을 앞개울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도 소리 죽여 이방인의 숨결을 듣는 듯 오롯이 고요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듯하다. 우케노구치 온천마을을 지나 호젓한 숲길을 들어선다. 섬나라 특유의 삼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며 걷는 이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올레’라는 말의 어원이 ‘거리길 쪽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드나드는 좁은 골목길’이란 뜻으로 제주도에서 만들어진 방언이지만 그 의미는 인공을 가미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길을 말하고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감명 받아 제주올레를 만들었다는 서명숙 이사장이 “올레에서 치유의 힘을 얻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 한 것처럼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걷다보면 지친 심신을 따스하게 위로해 주는 치유의 길임을 알 수 있으며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친교의 장이며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길이기도 하다.

▲ 밀크랜드에서 생우유와 생아이스크림을 파는 일본 여성의 무표정한 모습.

마을에서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사방이 트이고 넓고 장대한 한다고원(飯田高原)이 끝없이 펼쳐진다. 너른 초원지대를 가로 질러 저만치 낭만적인 모습으로 일행을 기다리는 밀크랜드농장에 들른다.
방금 짠 생우유를 파는 일본여인네의 무표정한 모습과 대조되듯 달콤한 생(生)아이스크림에 그간의 피로를 풀며 한낮의 평화로움에 몸을 맡긴다. 꿀맛 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는 우리에게 이 곳 연인들의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한 ‘야마나미 하이웨이’를 따라 난 좁은 말(馬)길로 ‘간세’가 인도한다.
길 입구에 세워진 말과 마차의 조형물이 탐방객을 맞으며 그 옛날 마차를 달리던 이 곳 주민들의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듯하다. 현재도 승마코스로 사용되고 있는 1㎞ 남짓한 말길을 걸어가 만난 너른 주차장을 겸비한 구쥬야마나미목장에 닿는다. 봄볕치고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목장 휴게소에서 인심 좋은 일행이 사 온 차가운 요거트에 입안을 식히며 지쳐가는 몸을 가누어 본다. 새벽부터 강행군을 한 일행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규슈의 속살을 보기 위해 애써 나선 여행길이라 선뜻 딴 마음을 먹을 수가 없다.

▲ 야마나미목장 시설을 통과하도록 만들어 놓은 올레길 안내 표시판.

아직도 목적지까지 4㎞ 정도는 더 가야 한다. 목장을 나와 잡목림 고원길을 걸어 하이웨이와 만나는 지점에서 낮은 나무들 사이로 난 숲길을 오른다.
산길을 오르는 옆으로 시라미즈가와(白水川)강 상류를 이루는 계류에서 흘러  내리는 물소리가 제법 시원스럽게 들린다. 곧장 올라가면 이 고장 사람들도 본 적이 없다는 시라미즈가와 폭포가 있다는 설명이 안내서에 나와 있지만 어디에도 안내판이 없어 물소리만 듣고 빠져 나온다.
야트막한 산길을 벗어나 광활한 초지가 조성된 쵸차바루원(長者原) 평원으로 난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골프장 몇 개를 만들어도 될 만한 목초지 군데군데 노야키(들판에 불을 질러 잡초를 태우는 일) 한 흔적이 보이고 끝도 없는 평원 너머로 규슈 본토에서 가장 높은 쿠우쥬연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람사르조약에 등재된 다데와라습원(濕原)이 만나는 지점에 오늘의 종착점이 있다. 꼬박 4시간 반을 걸은 셈이다.

▲ 삼나무 숲으로 우거진 산길을 따라 또 다른 세상으로 걷는다.

지친 몸을 마중 나온 버스에 싣고 숙소인 ‘호센지온천호텔 유모토야(湯本屋)’에 여장을 풀고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이제야 일본의 맛을 알 것 같다. 함께한 일행들과 후쿠오카에서 사 온 일본 명주(名酒) ‘구보다 만주(久保田 萬壽)’로 규슈올레 첫 여정을 자축하며 별빛 쏟아지는 밤을 달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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