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회귤고사(懷橘故事)
  • 모용복기자
신회귤고사(懷橘故事)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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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경북 예천에 가면 조선후기 때 효자로 유명한 도시복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효공원이 있다. 공원 내에 솔개, 수박, 호랑이, 잉어 등 네 가지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효자의 효심에 하늘과 뭇짐승들까지도 감동해 효자를 도왔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들은 명심보감에 실려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한 여름에 병든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다고 했다. 도시복은 감나무가 있는 집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지만 한 여름에 홍시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날도 이미 저물어 홍시를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채 만한 호랑이가 나타나서는 시복을 등에 태우고 쏜살같이 산속을 달려서는 강릉의 어느 외딴집에 내려놓았다. 마침 그 집이 제삿날이서 제삿상을 보니 홍시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시복은 자초지종을 말하고 홍시를 얻어 다시 호랑이 등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홍시를 드렸다고 한다.
 선조 때의 문인이자 무인인 노계 박인로가 한음 이덕형을 찾아갔을 때 소반에 받쳐 내놓은 조홍감을 보고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지은 효도의 노래 ‘조홍가’도 홍시가 소재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 즉도 하다마는/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
 
 여기서 유자(柚子)는 귤의 일종으로 육적(陸績)의 회귤고사(懷橘故事)에 착안해 지은 시조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육적은 중국 삼국시대 사람으로서 오(吳)나라 왕 손권의 참모를 지낸 인물이다.
 그가 6살 때 구강(九江)에 있는 어느 대갓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음식상에 귀한 귤이 놓여 있기에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귤을 품속에 숨겼다. 주인에게 하직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다 그만 귤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주인이 귤을 숨긴 연유를 묻자 육적은 어머니께 드리고자 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육적의 효심에 탄복한 주인은 따로 귤을 싸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육적회귤은 옛날에만 있던 일이 아니었다. 1800년이라는 시대를 거슬러 지금에도 그와 같은 아름다운 일이 있으니 사연인 즉슨 다음과 같다.
 지난달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 한 미용실로부터 화단에 심어 둔 꽃 7송이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사라진 꽃은 처음에는 튤립 3송이, 두 번째는 장미 2송이, 마지막으로 튤립 2송이었다. 경찰은 미용실에 설치된 CCTV 등을 분석해 70대 용의자 A씨를 잠복근무 끝에 현장에서 붙잡았다.
 조사 결과 A씨는 90세인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 노모가 꽃을 좋아하는데도 경제적으로 꽃을 살 형편이 못돼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백내장을 앓고 있었지만 돈이 없어 약을 복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내마저 몸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비록 A씨를 불구속 입건했지만 지난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이들에게 카네이션 바구니와 쌀, 라면 등을 전달하고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하면서 세상이 갈수록 삭막하고 살기 힘들다고들 하지만 이러한 미담(美談)이 우리 주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한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갸륵한 효심에 하늘이 감응해 상을 내리든 사람이 감동해 칭송을 하든 어진 행동에는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행동에는 후과(後果)가 뒤따른다는 법칙이 작동해야 제대로 된 세상이다.
 재산을 노리고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는가 하면 잔소리 한다고 부모를 마구 폭행하는 패륜아들이 판치는 미친 세상에서 현대판 ‘육적회귤’은 그 울림이 결코 적지 않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보고파진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사를 음미하며 왜 홍시가 열리면 엄마가 생각나고 눈물이 핑 돌 만큼 그리워지는지 생각해본다. 먹을 게 귀했던 시절 노인들에게 홍시만한 간식거리는 없었을 게다. 특별히 보살피고 가꾸지 않아도 가을이 되면 집 마당이나 뒤뜰에 선 큰 감나무에 저절로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맛 또한 어느 과일보다 달디 달다. 이보다 고마운 간식거리가 또 있을까. 특히 과육이 물렁물렁해 이가 좋지 않은 노인들이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늙은 어머니는 가을이 되면 홍시를 즐겨 드셨을 것이 틀림없다. 효자 이야기에 유독 홍시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가난하고 없다없다 해도 그래도 이제 입에 거미줄 치는 세상은 면했으니 홍시가 더 이상 효행의 수단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홍시가 떠난 자리에 붉은 튤립과 장미꽃이 활짝 피어나 세상을 향기로 가득 채우니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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