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망천(移副亡川)과 보수의 길
  • 모용복기자
이부망천(移副亡川)과 보수의 길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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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복의 세상 풍경
▲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날 몸에 이상조짐이 나타나더니 결국 고열을 동반한 심한 감기몸살로 주말을 고스란히 병마(病魔)에 헌납하고 말았다. 약을 먹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한 다음날 고열과 오한이 진정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허리와 골반 부위에 주기적으로 신경발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짧게는 몇 초, 길게는 몇 분 간격으로 일어나는 이 증세는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발작이 심할 땐 몸을 오징어 구이처럼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해 허리를 다친 기억이 떠올랐다. 11·15 지진 다음날 산행길에서 허리를 삐끗해 그 길로 5개월 가까이 치료를 한 끝에 지금은 거의 완치돼 웬만한 운동은 하고 있다. 그쪽 부분이 이번 감기에 발작이 도진 모양이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서경에 ‘약불명현궐질불추’란 말이 나온다. 약을 마시고 어질어질하지 아니하면 병이 낫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명현작용’이란 용어가 여기서 비롯됐다. 한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투약하여 치유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다른 증세가 유발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쾌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명현현상이 일어나면 몸의 가장 약한 부분부터 영향이 온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나의 신경발작 증세도 이와 유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유통기한 지난 약의 부작용일 수도 있고.
 6·13 지방선거가 전인미답(前人未踏) 여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17곳 광역단체장 중 대구·경북을 제외한 14곳을 민주당이 싹쓸이 했으며, ‘미니총선’이라 불린 12개 지역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김천을 제외한 나머지 11곳에서 승리했다. 역대급 압승을 거둔 민주당은 주도적인 국정운영의 발판을 마련한 반면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당 대표가 줄사퇴 하는 등 한동안 거센 후폭풍에 휩싸일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선거는 한 마디로 ‘보수의 궤멸’로 요약할 수 있다. 사상 유례 없는 보수 참패 원인으로는 한반도를 평화무드로 이끈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한몫을 했다. 하지만 역대 지방선거를 보면 대통령 지지율과 선거결과가 반드시 함께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를 제외하고는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선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참패는 보수 스스로 초래한 면이 적지 않다.
 자유한국당 참패의 원인으로 보수가치의 상실을 꼽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에 많은 부분 책임이 있는데도 한국당은 새누리당에서 간판만 새로 내걸고는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탄핵 이후 혁신과 반성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대립각을 세웠다. 당 대표는 현 정부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 ‘괴벨스 공화국’이라며 여론조작을 주장하는가 하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위장 평화쇼’라고 폄훼하며 민심과 괴리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당 대표의 언행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보수의 품격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선거 막바지 터져나온 당시 한국당 소속 정태옥 의원의 소위 ‘이부망천’(이혼을 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 발언은 대한민국 보수의 사고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오랫동안 인천 등지에서 행정관료를 지내며 이들 도시가 지닌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정 의원으로서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평소 가질 수 있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가 보수정당에 속한 국회의원이란 점에서 이 발언을 단지 개인적인 일탈의 차원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수도권 중심주의와 지역멸시, 나아가 일정 수준 이하 계층의 국민들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 한국사회 보수의 발상이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혼을 하고 파산을 하면 제대로 된 국민이 아니며, 서울 특히 강남 이상 계층의 사람들만 제대로 된 국민으로 여기는 보수의 사고방식 속에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보수의 가치란 찾아볼 수 없다. 돈이 없어 삶이 팍팍한 사람들, 취업이 안 돼 고개를 떨구고 창업에 실패해 사회 밑바닥으로 쫓겨나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않는 보수. 이들에게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보수 참패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선거는 국민이 정치에 약을 투여하는 치료행위다. 총선·지방선거 4년, 대선 5년간 썩고 오염되고 병든 부분들을 치유해 나라를 새롭게 하는 정화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의학의 ‘명현’처럼 정치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사회에 잠복해 있던 보수의 문제점이 이번 선거만큼 적나라하게 수면위로 드러난 적이 없다. 이것은 어쩌면 보수에겐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2년 후 총선에서 국민의 표심이 두려워 지금 단순히 무릎을 꿇고 사죄 퍼포먼스를 벌인다면 보수는 희망이 없다. 뼛속까지 거듭나는 자기반성과 사고의 대개혁만이 떠난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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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2018-06-19 07:38:23
맞습니다. 현재 자한당의 민낯. 보소의 민낯. 여실히 드러났던 한마디 이부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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