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가장 큰 이변을 꼽으라면 그동안 텃밭으로서 보수정당에 든든한 자양분을 공급해왔던 영남권이 드디어 진보세력에 의해 허물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2000년 이후 네 번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대구와 경북, 부산, 울산에서 기초단체장을 낸 것은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이 뿐만 아니다. 부산, 울산, 경남 광역단체장을 민주당이 싹쓸이 한 것은 물론 나아가 기초단체장도 20곳이 넘는 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한 때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가 한국당 후보를 바짝 추격하면서 TK지역에서도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대구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대구시장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한국당 후보가 한 치 앞도 모를 박빙의 승부를 펼치면서 대구 민심이 왼쪽으로 기우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한국당 권영진 후보가 예상을 깨고 10% 이상 득표율 차이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동구, 달서구 등 민주당 승리가 점쳐진 곳에서도 결국 한국당 아성을 무너뜨리는데 실패했다.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생가가 있는 구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을 감안하면 대구에서 기초단체장 한 명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집권 여당에게 뼈아픈 일인 동시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가 경북보다 더 보수적인 도시인가?’ ‘박정희 향수보다 박근혜에 대한 동정이 더 큰 걸까?’
이러한 의문은 선거 일주일 후에야 비로소 풀렸다. 그것은 박정희 향수도, 박근혜 동정론도 아닌 바로 먹고사는 문제였다.
소상공인은 직원 5명 미만의 서비스업이나 10명 미만의 제조업 등 영세사업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민경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할 점은 전국 대도시 가운데 대구 자영업자 매출 하락폭이 전국 최고로 높다는 점이다. 대구는 이 기간 32%나 급락해 서울(-28.6%), 세종(-20.5%), 대전(-16%), 경기(-10.7%) 등을 훨씬 웃돌았다.
대구의 자영업자 비중이 전국 최고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구는 지난해 자영업자 비중이 22.8%에 달하며, 인구 1000명 당 사업자 수도 서울 다음으로 높다. 이처럼 자영업의 도시라 할 수 있는 대구에서 매출이 가장 급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구시민의 살림살이가 팍팍하고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자영업 매출이 줄어든 것은 만성적 내수부진에다 지난해까지 호조를 보이던 수출마저 올 들어서는 성장세가 한 풀 꺾인데 이어 올해 초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 여파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저인금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종업원을 내보내고 가족 끼리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적자를 봐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종업원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개 1~2년 버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요즘 대구 도심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옆집이 빈 점포로 바뀌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불어 닥친 파랑(더불어민주당 상징색) 광풍(狂風)이 유독 달구벌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비록 보수와 과거 정권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민의 팍팍한 삶의 현실이 현 정권에 선뜻 마음 주기를 주저하게 만든 결과는 아닐까.
현 정부가 대구시민과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한 대구는 앞으로도 파란색에 물들지 않는 도시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서민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이 무너지면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서민경제가 무너지면 지역경제 전체가 파탄난다. 대구 자영업 매출 감소를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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