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경쟁과 학점 인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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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경쟁과 학점 인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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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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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경북도민일보 = 뉴스1]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강의에서 습득한 것을 평가한 후에 학점이 나간다. 대학의 현대적 학점제도는 이론은 있지만 19세기 말에 하버드대 엘리엇 총장이 도입한 것이다. 학생들이 단순히 수업을 듣고 가는 것보다는 평가해서 등급을 부여하면 훨씬 학습효과가 좋아진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학점 인플레가 심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대에서 학부 전공과목 성적이 A가 55.2%라는 조사도 나왔다. 성적이 지나치게 후하면 학업성취 기준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또 열심히 공부해도 그렇지 못한 경우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면 우수한 학생들의 성취동기를 감소시킨다.
학점 인플레는 학점경쟁의 결과다. 나는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이 대거 수강을 취소하거나 휴학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었다. 내 수업에 실망해서 떠난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 중간고사 전후해서 자기 학점의 ‘견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점을 올리기 위해 재수강, 삼수강을 한다. 학생들은 시험 때가 되면 애처로울 정도로 시험에 압도당한다. 교과 내용에 대한 질문보다는 시험 범위에 대한 질문이 더 많다.
학점 인플레는 오래된 문제다. 문헌에 의하면 하버드에서는 1894년에 이미 성적을 너무 후하게 주는 문제가 거론되었다. 1940년에 하버드에서는 C-가 가장 흔한 학점이었다. 2000년에 들면서 50% 이상이 A- 이상이 되었고 C 학점은 6%에 불과하게 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하버드에서 학점 중간값은 A-이고 가장 많은 학점은 A였다.
학점 인플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다. 강제 징집에 학점이 참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에는 대학생들에게 징집면제 혜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 혜택이 폐지되었다. 그러자 교수들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후한 학점을 주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은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다수의 교수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교수들의 고민은 치열한 학점경쟁의 시대에 엄격하게 학점을 내서 자기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게 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학비가 엄청나게 비싸진 것도 학점 인플레 요인이다. 낮은 학점은 학교가 돈만 잔뜩 받고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백이 된다. 등록금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하버드는 1825년에 등록금을 20달러에서 25달러로 인상했는데 그 때문에 학교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학점 인플레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학점의 종류를 줄이면 인플레 해소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일대 로스쿨은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합격/불합격(Pass/Fail) 제도를 채택했다. 학점경쟁을 줄이고 지적인 탐구에 더 많은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이유다. 학점경쟁은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데나 특정 과목에 대한 학습 비중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한다. 
스탠퍼드 로스쿨은 2008년에 P/F를 채택하기로 결정했고 끝까지 저항하던 하버드대 로스쿨은 스탠퍼드보다 한 학기 늦게 P/F로 바꾸었다. 하버드는 예일, 스탠퍼드보다 학생 수가 3배 많아서 파장이 더 컸다. 실제로는 우등-합격-‘간신히 합격’-불합격 4등급이다.
국내에서는 연세대 의대가 P/F 제도를 채택해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4년 동안 운영해 보니 ‘협공’이 살아났다고 한다. 발달시험으로 하향 평준화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교수들의 수업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다.
학점 인플레는 지금 국내 로스쿨에 적용되는 강제상대평가 같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P/F 도입 같은 세련된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 좋겠다. 전면 도입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비중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지금 국내에서 대학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대학은 청년들의 사회생활 교육에 효과적인 장소다.
대학을 거쳐나가면서 성품이 나빠졌다거나 식견이 부족해진 경우는 볼 수 없다.
취업난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좋은 추억, 친구들과 함께 학교문을 나서서 사회로 진출한다. 요즘 잊고 있는데 대학은 선량한 시민을 양성하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학생들의 지나친 학점경쟁은 여기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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