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산도 사람도 오어지에 담기면 한 폭 산수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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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산도 사람도 오어지에 담기면 한 폭 산수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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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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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아름다운 마을길 <3> 오어지 둘레길
▲ 오어지 둘레길 입구에 설치된 운제산 원효교.

[경북도민일보]  우리는 시간을 지배하고 있을까 지배당하고 있을까. 걷는 것이야 말로 진정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걷기 예찬’의 저자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의 사회학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이다. 브르통은 인간이 시간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걷기를 통해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은 걷던 멈추던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걷는 동안만큼은 사색을 통해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되고, 주체적 존재로서 자신의 왕국이 건설되어진다. 걷기 미학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피곤과 휴식이라는 소금과 설탕 같은 양가적 가치를 경험하게 한다. 칸트는 규칙적인 산책을 즐긴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철학을 산책 철학으로 귀결되어 지는 이유도 걷기가 위대한 탄생과 맥락지어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리케이온의 제자들과 주로 산책을 통해 대화와 사색을 하면서 철학적 담론을 생산하였다. 그의 학풍이 소요학파(逍遙學派)라 불리는 이유도 걷기를 통해서 철학적 체계가 갖추어진 것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다. 서양에서의 걷기가 철학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동양에서의 걷기는 그 자체가 철학 명제라 할 수 있다.
 노자철학을 계승한 장주는 ‘장자’ 내편의 첫 번째 제목을 소요유(逍遙遊)라 붙였듯이 걷는 다는 의미는 철학적 가치를 획득할 만큼 중요한 논점이었다. 소요유는 하지 않음의 함, 즉 저절로 그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에서 대자유인이 되어 걷는 것을 말한다. 가볍게 해석하자면 유유자적 노닐며 목적 없이 걷는 것을 뜻한다.
 그럼, 오늘은 대자유인이 되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떠나보자. 문명의 담장을 넘을 용기만 있다면 그 곳은 시간이 멈춘 상태로 우리를 받아들인다. 포항 도심과 그리 멀지 않는 곳에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는 명소가 있다. 운제산(雲梯山) 자락이 둘러친 오막 한 계곡 위로 오어사(吾魚寺)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 저수지와 산세가 겹친 언저리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바로 오어지 둘레길이다.
 

▲ 메타세콰이어 숲에 설치된 피크닉 테이블과 정자.

 △ 세상사람 근심걱정 다 털어놓아도 좋을 화쟁(和諍)의 장소
 오어지 둘레길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가 오어사이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한 불국사의 말사다. 오어사의 원래 이름인 항사사(恒沙寺)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몇 안 되는 현존 사찰 중 하나다. 항사(恒沙)는 힌디어로 강가(Ga g?)라 부르는 갠지스강의 모래를 뜻한다. 모래알 수만큼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혜공, 원효, 자장, 의상 네 조사와 인연이 있어 암자도 함께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원효암과 자장암만 남아 있다. 항사사에서 오어사로 사찰명칭이 바뀐 이유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원효와 혜공에 얽힌 이야기에서 명칭을 짐작할 뿐이다.
 원효와 혜공이 법력을 시험하기 위해 이곳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변을 보았는데 한 마리는 물속 깊이 사라졌고, 다른 한 마리는 물위에 놀고 있었다. 물위에 있는 고기를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해서 나 오(吾) 고기 어(魚)를 사찰명칭으로 하여 오어사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어사에서 오어지 둘레길 초입은 지척다.
 오어지 둘레길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오어사 주차창에서 시작해 오어지를 한 바퀴 둘러오는 총 7km로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원래 오어지 둘레길은 오어사 앞을 지나 원효암으로 가는 아랫길과 연결되어 오어지 가장자리로 돌아가는 코스였다. 2016년부터 오어지를 가로지르는 현수교로 된 출렁다리가 개통되면서부터 원효암길과 연결되는 코스는 폐쇄되었다.  

 118m가 조금 넘는 출렁다리를 건너다 짓궂은 관광객을 만나기라도 하면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 온 뒤라 산허리를 감싸고 있던 안개가 골짜기를 거슬러 사라지는 광경은 대자연의 기운생동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불과 몇 분 만에 안개에 덮였던 산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산등성이를 촉촉이 적셨던 물방울이 햇볕에 반사되면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실경에서 맞이하는 듯하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너덜길에 파인애플 껍질을 엮어 깐 멍석길이 나온다. 수목이 우거진 평탄한 길을 조금만 걷다보면 빽빽이 들어찬 나뭇가지 사이로 오어지의 시퍼런 물이 바로 옆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채 5분을 걸었을까. 벤치마다 무리지은 사람들은 문명세계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내고 있었다.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곳에는 오어지가 펼쳐져 있다. 이곳 물이 유독 짙푸른 까닭에는 어쩌면 사람들의 상처받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서일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아련하게 멀어질 쯤 주변 경치가 달라지면서 데크로드가 시작되었다. 절벽을 이용해 설치된 데크로드는 그 높이만큼이나 오어지를 최상의 조건에서 조망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다지 숨 찰 정도로 걷진 않았지만, 이쯤에서 쉴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오어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이 나타났다. 전망데크는 조망을 방해하는 나무가 없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확 트인 공간이다. 먼저 온 노인이 시선을 아득히 두고 정가(正歌)를 부르고 있다. 그 모습이 이미 자연을 닮아 초연하다. 저수지 물이 줄어서일까 가장자리가 훤히 드러난 곳에 남생이바위가 오어지에 반쯤 걸쳐있다. 오어지에는 예전부터 남생이가 많이 살았던 곳이다. 천연기념물 제453호인 남생이는 민물거북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은 멸종위기야생동물로 분류되어 있어 이곳 오어지에서도 남생이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둘레길 첫 번째 휴게시설에서 만난 사람들.

 △ 심산유곡 무릉도원에서 속세 사람들을 만나다
 다시 너덜길이 시작되면서 주변 수목도 간간히 소나무로 바뀌기 시작 한다.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다는 느낌이 있을 쯤 다시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금방 사라졌던 오어지가 다시 눈앞에 나타난다. 들길 걷어가듯 편안한 마음으로 가다보면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메타세콰이어 숲이 이국적 정서를 풍기며 시선을 유혹한다. 곳곳에 마련된 피크닉 테이블에는 원색의 화려한 등산복이 들꽃처럼 피어 있다. 정자에는 일치감치 일가족이 차지하고 소풍을 즐기고 있어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만큼이나 평화롭다. 사람들 대부분은 비교적 잘 만들어진 편의시설을 이용해 삼림욕을 즐기며 망중한에 빠져있다. 물이 빠져 허옇게 드러난 백사장에는 버드나무 한 그루가 오아시스를 내려다보듯이 오어지를 쳐다보고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시간이 멈춰버린 세계 같다. 간간히 움직여보는 사람들 동세만 유유자적할 뿐이다.
 몽환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듯이 메타세콰이어 숲을 지나면 잡목이 우거진 숲길은 어느새 하늘까지 가리고, 가지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줄기가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조금 전까지 시선을 향해 따라오던 오어지가 일시에 사라지고 길은 점점 골짜기로 들어간다. 작은 등선을 넘어서자 한적한 시골길처럼 평탄한 너덜길이 펼쳐지고 원터골이라 적힌 안내판이 나온다. 옛날 이곳은 오천에서 경주로 넘어가는 길목의 중간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심산유곡이라 행인들이 묵어갈 수 있도록 고을 원님이 집을 지어 놓았는데, 그 집을 원(院)이라 하였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어 원터골이라 불린다고 한다. 안내판 뒤로 넓지 않는 평평한 곳에 원터로 짐작되는 터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안항사 입구까지는 다시 1.6km를 더 가야한다. 물 빠진 오어지 끄트머리를 가로질러 맞은편 둘레길에 올라서자 주변 수목들이 다시 잡목으로 우거져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너덜길로 되어 있지만 길은 한결 넓어져 걷기에도 편안하다. 조금만 가면 건너편 메타세콰이어 숲 쪽을 바라보면서 지나왔던 곳을 다른 시각에서 감상할 수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방향이 역전되면서 광선도 바뀌고 오어지를 둘러싼 산세가 수채화로 그려놓은 풍경처럼 투명하게 들어온다. 햇볕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오어지 물결은 은박지를 깔아 놓은 것처럼 눈부시게 반짝인다. 건너편 메타세콰이어 숲에서 봤던 정자와 똑같은 정자가 눈에 나타난다. 이곳 지명이 황새등이다. 이곳 지형이 황새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새등 정자에서는 지금까지 거쳐 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이 모두 드러나는 확 트인 곳이다. 그야말로 황새등에 올라 탄 느낌이다. 운제산은 오어지로 채워 그 곳에 하늘을 품으려 하였을까 오어지 맑은 물이 세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오어지 가장자리에는 감나무가 고사목이 되어 드러나 있다. 오어지가 생기기전 이곳에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심어놓은 감나무다.
 칡넝쿨이 주변 나무들을 에워싸 길은 훤해지고 비로소 파란 하늘이 열린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들 꽂이 한창이다. 개중에는 유심히 들여다봐야 눈에 들어오는 꽃도 있는데, 좁쌀만 한 꽃잎과 수술이 크기에 비해 어찌나 정교한지 있을 것 다 갖추고 있어 대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오어지 둘레길은 갖가지 야생화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다.

▲ 김춘봉 씨가 5년간 쌓아 만든 오어지 둘레길 돌탑.

 안항사 입구가 가까워지는 지점에 마이산에서 본 듯한 탑들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오어지 둘레길이 개통되면서 김춘봉이라는 분이 5년간 돌을 쌓아 완성했다고 한다. 몇몇 돌탑은 얼마 전 지진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돌탑 일부분이 허물어져 있어 안타깝게 했다.
 여기서부터 향사리를 거쳐 오어사까지는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다니는 아스팔트길이다. 오어지 둘레길은 비교적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둘레길 주변 풍광이 뛰어나 2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김용진 작가

경북문인협회 회원, 디자인학 박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지역문화콘텐츠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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