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 악마가 산다
  • 모용복기자
우리 마을에 악마가 산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용복의 세상 풍경
▲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준다는 아버지 친구의 말을 믿고 따라 나섰다 8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전남 강진 16살의 여고생이 지난달 26일 친구들의 배웅 속에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앞에 선 학생들은 하염없는 눈물로 친구를 떠나보냈으며, 참석한 조문객과 마을주민들도 여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끓는 가슴으로 지켜봐야 했다.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16살 여고생의 비통한 사연이 하늘마저 울렸던지 이날 전국에는 온종일 장맛비가 쏟아졌다.
 여고생 살해 유력 용의자는 다름 아닌 50대 아버지 친구였다. 그는 여고생 실종 다음날 자신의 집 인근에 있는 한 공사현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친구 딸에게 한 몹쓸 짓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자살한 것인지 아니면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여고생에 대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행위는 죽음으로 상쇄될 수는 없다.
 용의자가 사망하더라도 범행사실이 확정된다면 경찰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수사를 한다. 비록 용의자를 법정에 세울 수는 없지만 피의자로 신분을 전환한 뒤 수사기록에 올릴 수 있다. 다만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된다고 해도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 된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강진 여고생 살해 용의자도 이미 사망을 했으므로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될 수는 있을지언정 재판을 하지 못하고 검찰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된다. 하지만 그를 단두대에 세워 죄를 단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죄상(罪狀)을 낱낱이 파헤쳐 세상에 알리는 것만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여고생의 한(恨)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길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범죄수법과 추가 범행여부에 대해 철저히 수사를 해야 한다. 만약 숨진 여고생이 SNS로 자신의 동선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 용의자의 주도면밀한 범죄수법이 경찰수사에 의해 속속 드러나면서 그가 완전범죄를 노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완전범죄 계획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이 아직도 이 산하 어디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억울한 한을 풀어줄 날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사당국은 숨진 용의자가 다른 여성 실종사건과 연관은 없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그는 평소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성적으로 굉장히 문란한 사람으로서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과 2001년 강진에서 1년 새 여자 초등학생 2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직까지 생사가 불명인 상태다. 이 두 아이가 실종된 곳에서 불과 10여㎞ 떨어진 거리에 용의자가 거주한 점도 의혹을 짙게 하는 점이다. 당시 용의자는 트럭을 몰고 강진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며 개장수 일을 했다. 만약 그가 범행대상을 물색해 치밀한 계획을 통해 실행에 옮겼다면 그를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단서를 남기지 않은 한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믿는 건 오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믿음이었을 테니까.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 전남도내 22개 시·군에서 실종된 성인여성은 155명 중 강진을 비롯한 인근 해남, 영암, 장흥지역에 전체의 22.5%(35명)가 집중돼 있어 이번 여고생 피살사건 용의자와 연관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
 최근 톰슨로이터재단 조사에 따르면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 순위에서 인도가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인도는 지난 2007년부터 2016년 사이에 83%나 여성 대상 성범죄가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한 시간에 네 번꼴의 강간사건이 발생했으며 심지어 2주 전에는 인신매매 반대운동을 벌이던 여성운동가 다섯 명이 인도 서부에서 갱단에게 총기위협을 받고 강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미국이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투’운동을 계기로 여성 대상 성폭력 사례가 잇따라 외부에 알려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는 치안이 비교적 잘 돼 있어 범죄로부터 안전한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넘비오(NUMBEO)가 최근 발표한 2016년 세계 치안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범죄지수가 14.31, 안전지수가 85.69로 조사대상 117개국들 중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과연 그렇게 안전한 나라일까?
 조용한 농촌지역에서 초등학생이 잇따라 실종되고 여고생이 지인을 따라 나섰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등 무턱대고 안심하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흉포화 된 지 이미 오래다. 또한 미궁에 빠진 수많은 여성 실종사건을 감안하면 범죄의 심각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할 지도 모른다. 이번 강진 여고생 살해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실종 여성에 대한 전수조사에 즉각 나서야 한다.
 열여섯 살의 꽃다운 나이에 못된 어른의 흉악한 범죄행위로 생을 마감한 소녀의 죽음 앞에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제 더 이상 악마(惡魔)들이 살지 않는 곳, 성범죄의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