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승부욕과 명품사랑
  • 모용복기자
한국인의 승부욕과 명품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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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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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이번 러시아 월드컵 한국대표팀 경기를 지켜보면서 성질 못 죽이고 홧병에 걸린 국민들이 꽤나 있었을 것 같다. 조별리그 경기에서 내리 2연패를 당해 울화통이 터질 즈음 마지막 최종경기에서 세계랭킹 1위 ‘전차군단’ 독일을 상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내 귀국길에 계란은 밟았을지언정 돌세례는 면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일본이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남미 팀을 꺾는 대이변을 연출한데 이어 ‘산책축구’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아시아 팀으론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하는 활약을 펼친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 대표팀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일본은 경기내용에서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치 훌륭했다. 16강전에서 세계랭킹 3위 ‘붉은 악마’ 벨기에를 상대로 두 골을 먼저 앞서가다 막판에 내리 3골을 먹는 바람에 아깝게 8강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지만 경기내용은 승리한 팀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국내 공영방송 해설위원이 역전골을 터뜨린 벨기에 선수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 것도 한편으론 이해할 만도 하다.
모든 스포츠가 친선경기가 아닌 이상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승부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경기내용이 과격해지고 평소 자신이 갖고 있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유럽, 남미 팀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국가인 일본에 비해서도 경기력과 세련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잦은 패스미스와 롱패스, 과격한 태클, 문전처리 미숙 등 한국축구의 고질적 문제로 지목돼 온 것들을 이번에도 종합세트로 선보였다. 이를 두고 정신력 저하를 지적하는 팬들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지나친 승부욕이 가져온 결과는 아닐까?
세 번의 경기 내내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랑인 에이스 손흥민의 눈물을 봐야만 했다. 두 번의 경기에서는 패배로, 한 번의 경기에서는 승리의 기쁨에 흘린 눈물이다. 그가 얼마나 승리에 간절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오랜 외국생활에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천상 그도 한국인이며 몸 속엔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손흥민 뿐이겠는가. 감독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승부에 너무 집착하면 경기를 즐길 수 없고 즐기지 못하면 몸이 굳어져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아시아 팀 중 제일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를 보유한 한국이 대표팀 전체를 합쳐도 손흥민의 두 배도 안되는 일본에 비해 경기력이 떨어지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필자가 아는 어떤 축구팬이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자기 소속 팀에서 뛸 때는 잘하면서도 왜 우리 국가대표팀에서 경기만 하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물론 팀 동료와의 호흡이나 연습부족 등 원인이 있겠지만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 또한 경기력 저하로 작용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승부욕은 축구경기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지난 2일 국내 한 유명 백화점에서는 명품시계를 사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백화점 유리문마저 부숴버린 일이 있었다. 서울 어느 부자 동네 얘기가 아니다. 이날 오전 광주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1층 입구에는 영업시간인 11시 이전부터 70여명의 손님들이 길게 늘어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백화점 내에 입점해 있는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인 롤렉스 판매점이 1000만원에 달하는 시계 모델에 대해 예약을 받겠다고 공지한 날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조금이라도 더 일찍 예약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길게 줄을 섰으며, 백화점 영업시간이 다가오자 일부 손님들이 아직 열리지 않은 정문을 강제로 열려고 밀치는 과정에서 유리문이 밀리면서 부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백화점도 이 정도로 많은 손님이 몰릴 줄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지방이 이 정도인데 서울 등 수도권은 더 말하면 입만 아플 것이다. 물 밖으로 나가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인 필자로서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우리나라만큼 명품에 집착하고 백화점 문을 박살내면서까지 쟁탈전을 벌이는 국민들도 쉬이 찾아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명품사랑은 일종의 과시욕이다. 돈에 대한 집착의 극대화된 모습이다. 돈은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길거리에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남에게 자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돈 대신 간단하게 몸에 지니면서도 남의 눈에 잘 띄는 명품에 집착하게 된 것은 아닐까?
명품은 남이 갖고 있으면 이미 명품이 아니다. 아무리 비싼 옷, 비싼 차(車)도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면 명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타인에게 없는 것을 내가 가짐으로서 남이 우러러 봐줄 때 비로소 명품으로서 빛을 발한다. 남보다 앞서고 우월해지려는 심리, 즉 남을 이기려는 승부욕이 명품사랑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승부근성은 과거 국란(國亂) 등 환란상황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이어져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병폐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승부보다 좀 재미있게 축구를 즐기고 남에게 대접받으려 하기보다 자기 멋에 따라 삶을 살아갈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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