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세레나데가 주는 위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한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남자와 여자가 우연한 인연으로 사랑에 빠지면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행복함이 나타난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써 보았을법한 ‘러브레터’, 그리고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근사한 카페에서 남자가 여성에게 반지를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이다.
클래식음악에도 특별하게 ‘사랑’의 장르가 있다. 이름하여 ‘세레나데’라고 하는데, ‘세레나데’는 이탈리아어로 저녁을 뜻하는 ‘sera’와 건물 밖에서라는 뜻의 ‘al sereno’에 어원을 둔 기악곡과 성악곡 모두에게 적용되는 음악양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세레나데’는 어두운 밤에 한 남성이 사랑하는 여인의 집 창문 앞에서 사랑을 호소하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노래이다. 시대가 흘러 점차 가사가 없는 관현악 작품에서도 세레나데라는 장르가 생겨나서, ‘사랑’을 주제로 한 우아하고 로맨틱한 멜로디의 선율은 노래로 부르는 세레나데와 공통점이 있다. 기악곡에서는 세레나데를 ‘소야곡’ (小夜曲)이라고 번역해서 ‘저녁의 음악’으로 부르기도 했고, 비슷한 기악곡의 장르로는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기분전환)와 ‘야상곡’(Notturno)이 있다.
세레나데 중에서 오늘은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현을 위한 세레나데’ C장조 작품번호 48번에 대해서 전하고자한다.
△모차르트와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설이 있다. 젊은 시절 차이콥스키는 공연을 위해 유럽을 자주 여행했는데, 이때 고전주의적 음악에 매료되었었는데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에 깊은 감명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소야곡’ Eine Kleine Nachtmusik)을 모델로 하여 차이코프스키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세레나데를 작곡했다. 첫 서주부분의 느린 도입부분은 모차르트식의 고전의 소나티나의 형식을 기초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명쾌하고 간결한 그만의 개성, 특히 그의 특징인 러시아적인 선율을 곳곳에 심어놓았다. 예를 들어 마지막 악장은 러시아 주제에 의한 것으로 민요 ‘목장에는’, ‘푸른 사과나무 아래서’를 주제로 사용했다. 이렇듯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는 단순 모방이 아니라 옛것의 좋은 장점들을 사용하여 새로이 재창조하여 탄생된 것이다.
△사랑의 감사, ‘현을 위한 세레나데’
사랑을 모르고 어찌 사랑의 노래를 작곡할 수 있으라!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차이코프스키가 결혼생활에 실패를 하고 그의 가장 큰 후원자 메크 부인을 만났을 때 작곡되었다. 메크 부인은 미망인이었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인정해주는 재력의 후원자였다. 이들은 생전에 서로 만난 적도 없었고 후원금과 편지왕래만 있었을 뿐 설사 우연히 만난다하더라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메크부인이 만남을 원하지 않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그녀를 신뢰하고 의지 하였고 메크부인은 그의 음악예술을 흠모하였다.
제1악장 Pezzo in forma di Sonatina- Andante non troppo-Allegro moderato
아주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현악기의 선율로 시작하는데 이 선율은 점점 발전되어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차이코프스키의 극적인 멜로디와 지극히 서정적이고 우아한 세레나데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제2악장 Waltz, Moderato tempo di valse
차이콥스키에게 왈츠는 특별하다. 그의 왈츠에 대한 애정이 유난히 표현된 작품으로 2악장 단독으로도 공연 프로그램이 될 정도로 아주 유명하다. 우아한 왈츠 선율이 마치 아름다운 백조 한 쌍이 왈츠를 추는 모습이 연상된다. 곡 중반으로 갈수록 점차 화려해진다. 왈츠 악장의 전체 선율은 우아하고 화려하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멜로디가 친숙하게 들린다.
제3악장 Elegie, Larghetto elegiaco
슬라브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토속적인 선율에 모차르트 시대의 화려함과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찬란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비가’를 노래한 악곡으로 아름다우면서 슬픈 곡이다.
제4악장 Finale, Tema russo Andante-Allegro con spirito
두 개의 러시아의 민요선율(‘목장에는’, ‘푸른 사과나무 아래서’)이 주제를 이루고 있고 1악장에서 들려주었던 주제선율을 마지막 4악장에서 두 번째 주제를 사용하여 작품의 전체적인 통일감을 강조하였다. 장대하면서도 비탄에 잠겨있다. 하지만 바로 환희와 희열을 느끼는 음색으로 바뀌어 마지막 장관을 이룬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필자도 여러 번 공연한 곡이다. 연주를 할 때마다 필자에게 다가오는 감동은 매번 달랐다. 연주가에게 있어서는 사실 세레나데라고 표현하기에는 작품성이 수준이 높고 교향곡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그만큼 이 곡을 직접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는 특별히 이 작품을 각별히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다고 하는데, 필자는 이점에 있어 공감하는 바가 있다.
사춘기 풋사랑, 20대 아내를 만나 첫사랑에 빠졌을 때, 힘든 독일 유학생활을 함께 겪으며 진하게 된 30대의 사랑, 그리고 아들을 함께 키우며 느끼는 40대 가장의 사랑, 사랑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 그대로이지만 작았던 애호박이 점점 성장하고 속이 꽉 차면서 익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의 순간은 일생 단 한번뿐이지만, 그러한 사랑의 감동과 열정을 되새겨 볼 때마다, 아내가 되어주어 고맙고, 아이 엄마가 되어주어 감사한 마음이 더 커져간다. ‘세레나데’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도 있지만, ‘사랑하는 당신이 옆에 있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도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폰 메크’ 부인에 대한 사랑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감사와 존경의 사랑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사랑하는 그대가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차이코프스키의 진실어린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무더운 여름철, 가장 사랑받아야 할 사람에게 혹시나 불평과 불만으로 함부로 대하고나 있지 않은지,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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