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가(龜旨歌)를 위한 변명
  • 모용복기자
구지가(龜旨歌)를 위한 변명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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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나는 아직까지 국어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내가 좋아한다고 남들도 다 그래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민족의 사상과 감정이 농축돼 있으며 조상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문학작품들과 친숙해질 수 없다면 그는 진정한 한국인이라 하기엔 2% 부족한 면이 있지 않을까?
 내가 국어와 친숙하게 된 것은 확실히 내 감성적인 성향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직까지 몇 구절쯤은 읊을 수 있는 주옥같은 시, 그리고 소설, 수필들… 어떤 때는 밤이 늦도록 제 멋에 젖어 턱도 없이 소설의 주인공이 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시답잖은 시 몇 줄 끄적거려 놓고 마치 시인이라도 된 듯이 우쭐하곤 했다. 한 때 문학 소년을 꿈꾸던 어린 시절과 밤이 늦도록 습작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조금의 문장력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국어를 좋아한 이유는 딱히 문학작품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가에 대한 일화나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 그리고 가끔은 야한 농담까지 덤으로 선생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이야 자판 몇 개만 두드리면 컴퓨터가 척척 다 알려주는 세상이 됐지만 당시에는 ‘○○전과’라 해서 그 곳에 적혀 있는 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사설 출판사에서 시험을 대비한 영리 목적으로 펴내다 보니 내용도 빈약할뿐더러 당연히 재미도 없다. 조금 양념을 곁들인 선생님의 설명에 비할 바가 결코 못 된다.
 남자 선생님들 중에는 간혹 짓궂은 분도 계셔서 문학작품에서 성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학생들을 향해 “너그 잠잘 때 ○○ 너무 만지면 ○○ 떨어진다”는 등의 농담도 하시곤 했다. 고전문학 가운데 구지가, 처용가 등 성(性)을 모티브로 한 고대가요나 향가 수업 땐 선생님들은 조금 더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일부러 과장된 표현을 쓰기도 했다.
 특히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주제인 고려속요는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학생들 모두가 즐겁고 조금은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남녀 간의 사랑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어 불타는 청춘들 심정이 오죽했으랴.
 물론 샌님처럼 당황스러워하는 학생들도 몇은 있었을 것이다. 만전춘이나 쌍화점 같은 문학작품들이 등장하면 자연스레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지고 설명이 길어진다. 학생들의 싱숭생숭한 심리를 간파한 선생님이 ‘이 때를 놓칠 새라’ 본인이 가진 성 지식을 총동원해 학생들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고 만다. 그렇다고 당시 학생들이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다거나 문제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고 들은 바는 없다. 문학은 인간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본령(本領)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의 한 사립고등학교 국어교사가 고전수업 도중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학급 수업에서 배제된 일이 발생했다. 고대가요 ‘구지가’를 가르치면서 거북이의 머리가 남자의 남근(성기)을 의미한다거나 ‘공무도하가’ 학습부분에서 수메르어에서 바다를 뜻하는 ‘미르(mar)’가 자궁을 뜻한다고 가르쳤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업 후 학부모로부터 민원이 제기되자 학교측은 이를 받아들여 해당 교사의 발언을 성희롱으로 판단해 전격 교체했으며, 국어교사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 징계 조치가 부당하다고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 국어교사의 발언이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인권위 조사 후 밝혀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실이야 어찌됐든 학생이나 학부모, 학교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지도 모른다. 요즘은 성과 관련된 일이라면 조금만 삐딱해지면 그대로 곤두박질치는 세상이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성이 자유분방한 세상에서 성과 관련해서는 그 어느 시대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니 말이다. 국어교사가 고대가요 ‘구지가’를 가르쳤으니 망정이지 고려가요 ‘만전춘’이라도 가르쳤더라면 정말로 경을 칠 뻔했다. 앞으로 국어수업에 교사들은 성과 관련된 부분들을 모두 ‘거시기’로 표현하라는 교육부 지침이 하달될 지도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또래 학생 집단폭행, 성매매 강요 등 여중생들의 도를 넘은 일탈행위에서 ‘구지가’의 순수함을 발견할 수는 없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엇갈리는 두 모습에서 세대를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잔인성을 보는 듯하다. 자신에게 조금만 손해되는 타인의 행동이나 말을 용납하지 않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배척하고 공격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요즘 세태 풍경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구지가 성 발언 논란이 어쩌면 고려속요를 ‘남녀상열지사’로 금기시하던 조선조 초기의 풍조와 닮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 옛날 국어 선생님의 야한 농담과 수줍음 많던 학생들 얼굴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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