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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최초 한류 발원지, 영천 조선통신사 길을 걷다경북의 아름다운 마을길-<5> 영천 조선통신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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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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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래실문화마을에 있는 시안미술관.
   
 

[경북도민일보]  411년 전 일본에 조선풍을 유행시킨 국가공인 외교문화사절단이 있었다. 바로 조선통신사다. 임진왜란 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게 되지만 정국은 여전히 불안정하였다. 조선과 명의 외교적 문제도 도요토비 히데요시의 침략으로 악화된 상태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국내정치를 안정시키면서 조선과 국교정상화도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대마도 소씨 가문을 동원해 조선에 사절단 파견을 요청하게 된다. 조선도 임진왜란으로 깨진 일본과의 선린외교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일본 정세 파악과 전쟁 때 끌러간 조선인 쇄환에 더 큰 목적이 있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 1차 파견을 시작으로 막부(幕府) 우두머리가 새로운 관백(關白)으로 승습 때 마다 1811년까지 총 12회에 걸쳐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조선통신사 파견은 일정한 외교적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먼저 막부의 명을 받은 대마도주가 관백승습고경차왜(關白承襲告慶差倭)라는 관백 승습을 알리는 외교사절단을 조선에 파견하고, 이어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이라는 통신사 파견 요청 외교사절단을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조선조정에서는 중앙관리 3인으로 구성한 정사, 부사, 종사관을 임명하고 최소 300명에서 최대 500명으로 사절단을 편성하였다. 1607년 1차 조선통신사는 정사 여우길(呂祐吉) 부사 경섬(慶暹) 종사관 정호관(丁好寬)을 비롯해 467명을 파견하였다. 당시 부사 경섬의<해사록(海?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해 뜰 무렵 대궐에 들어가 하직하니, 술과 말 안장, 정남침(定南針:나침반) 한 부(部)를 명하여 내려주었다. 먼저 장무역관(掌務譯官:우두머리 역관)으로 하여금, 서계(書契:외교문서)를 가지고 강가에 가서 기다리게 하였다. 오전 사시(巳時:9시)에 출발하였다.”고 되어 있다.
 1월 12일 정릉동 행궁에서 출발한 사절단은 2월 8일 부산포에 도착하였다. 조선통신사 길은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하기까지 33개 역을 거치고 부산에서 오사카까지는 해로로, 도쿄까지는 다시 육로로 이동하는 왕복 1만1180리에 달하고, 짧게는 8개월 길게는 1년이 소요되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이들이 일본으로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수시로 변하는 바다의 기상조건은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실제 1703년 2월 사절단이 탄 배가 쓰시마 도착을 앞두고 와니우라 앞바다에서 좌초돼 108명 전원이 사망했다. 쓰시마에는 이들  희생을 기리는 조선통신사순국비가 세워져있다. 207년간 한성에서 교토와 도쿄를 12번 다녀간 조선통신사 길은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의 길이었다. 임금은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그곳이 바로 영천이다. 통신사 사행원(使行員)은 1차 집결지 한성을 출발해 2차 집결지 영천에서 대부분이 합류하였다. 영천은 인근에 거주한 사행원이 한성에서 내려온 사행원과 합류하던 장소이고, 이들을 접대하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던 지역이었다, 일본에서 시연될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프로그램 리허설도 겸해졌다. 영천은 조선 최상위문화의 기착지이자 일본에 조선풍을 유행시키는데 문화적 토대가 되어온 지역이다. 그럼 400여 년 전 조선통신사 영천 길, 영천 신녕에서 조양각까지 사행 길을 더듬어 따라 가보자. 
 

   
▲ 통신사 사절단에게 연회가 베풀어졌던 환벽정.

 환벽정에 오르면 시인이 된다
 조선통시사 영천 길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신녕중학교에서 시작해 장수도찰방이 있었던 관가샘, 신녕면사무소, 환벽정, 화산면 효정마을, 가래실문화마을, 암기마을, 녹전, 대전, 오미, 영천향교를 거쳐 조양각까지 26㎞로 6시간 정도 걸린다.
 신녕중학교를 지나 작은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전형적인 한국 시골마을이 나온다. 장수도찰방이 있었던 매양마을이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비교적 넓은 골목 좌우로 지붕 낮은 집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지붕들이 담장 아래로 반쯤 고개를 넣고 대신 호박넝쿨이 넓은 잎을 흔들며 손님을 반긴다. 시골집 담장은 어째서 지붕을 반쯤 가릴 만큼 높은 것일까? 찰방길로 들어서자 농기구를 실은 경운기가 특유의 엔진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골목으로 들어온다. 범접할 수 없는 그 모습이 딱 들판에서 농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친 황소 같다. 이곳 찰방길은 한성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 행렬이 신녕 매양마을로 들어오던 길이자 영천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검정색 말들이 흰 담장을 날아가듯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이 찰방길임을 알려준다. 여기서부터 잘 가꾸어진 담장은 마치 야외 미술관을 보는 듯하다. 담장 한편에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었던 포은 정몽주가 장수도찰방을 노래한 시도 있다. 또 장수역 찰방을 지낸 화산관 이명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다산 정약용에 의하면 이명기는 특히 초상화로 이름이 났는데, 임금인 정조의 어진에서부터 대신과 재상들의 초상까지 그렸다고 한다. <승정원일기>에도 이명기는 김홍도보다 10살 이상 후배이지만, 얼굴 그림만은 김홍도보다 뛰어났다고 되어 있다. 찰방길 끝에는 돌로 쌓아 올린 우물이 있는데 장수역에서 사용하던 관가샘이다. 통신사 사행원들도 이곳 샘에서 지친 말에게 물을 먹였을지도 모른다.
 옛 신녕현 본관을 찾아 신녕면사무소에 들어서자 아담한 계단식 광장언덕에 32개 선정비가 있다. 그중 장수역 찰방비가 눈길을 끌었다. 사행원들은 이곳 본관에서 여정을 풀고 환벽정(環碧亭)에 마련된 연회에 참석했다. 환벽정은 신녕면사무소 북쪽 신녕초등학교 서편 언덕에 위치한 육각정자로 지붕은 겹처마 모임지붕으로 된 이익공 양식으로 된 정자다. 환벽정 골짜기 아래로 좁은 가천천이 흐르고, 확 트인 조망이 시조 한수 정도는 흥얼거리게 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천정에는 퇴계 이황, 회재 이언적, 사가 서거정을 비롯해 당대 이름을 떨친 학자들의 제영시(題詠詩)가 약 37개 시판(詩板)에 쓰여 빈틈없이 걸려있다. 사행길에서 쌓인 여독을 공연으로 풀고 풍광에 취해 일필휘지(一筆揮之)를 유혹했던 풍류 공간이다.
 

   
▲ 신녕면 찰방길에 위치한 관가샘.

 가래실문화마을은 마을 전체가 야외 미술관
 환벽정을 뒤로한 조선통신사 영천 길은 화산면 효정마을을 지나 가래실문화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마을 초입으로 들어서자 작은 들판을 경계로 한쪽은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 풍경은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평온함 그 자체다. 가래실문화마을은 2011년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 곳곳이 예술작품으로 꾸며진 야외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조선통신사 영천 길에서 가래실문화마을을 여유롭게 느끼려면 별도 여행일정을 잡아도 좋을 만한 곳이다. 마을은 新 몽유도원도 다섯 갈래 행복 길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걷는 길은 가상리 마을을 중심으로 골목골목 숨어있는 예술작품을 찾아가는 마을산책 길이다. 안내센터에서부터 복사꽃 다방, 우리동네 박물관, 아트마켓과 행복 프로젝트 아카이브 전시장, 아트스테이 풍영정, 탁본벽화 등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둘째 바람 길은 바람의 자전거와 아트 자동차를 타고 마을 전체를 커다랗게 한 바퀴 돌아오는 것으로 동네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다. 셋째 스무골 길은 가상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생태와 역사문화가 있는 트레킹코스로 되어있다. 넷째 귀호마을 길은 지방문화재인 귀애고택을 중심으로 구성된 역사문화와 현대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보물길이다. 다섯째 도화원 길은 복숭아밭이 넓게 펼쳐진 모산 골짜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산책코스로 봄에 이곳을 찾는다면 무릉도원을 경험하게 된다. 버스 승강장이 동화를 연상시키게끔 재미있게 디자인되어있다.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이란다. 시안미술관은 1999년 폐교된 화산초등학교 가상분교를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다. 잔디로 조성된 6000여 평의 조각공원과 야외음악당을 갖추고 미술관 3개 층에는 각 층마다 4개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1~3전시실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있다. 2층 카페는 잠시 여유를 즐기며 쉬어 가기에 좋은 곳이다.
 

   
▲ 전별연과 마상재 시연이 펼쳐진 조양각.

 최초 한류 리허설이 펼쳐져진 조양각
 이어지는 조선통신사 영천 길은 화산면 암기리를 지나 녹전동, 대전동, 오미동을 거쳐 교촌길 34에 위치한 영천향교에 도착하게 된다. 영천향교는 1435년 세종 17년에 건립되었고, 이후 소실, 중건, 보수를 거듭하며 현재 형태가 되었다. 공자와 성인 스물다섯 분 위패가 있고 봄가을에 제향을 올린다. 5칸의 대성전, 10칸의 명륜당이 있고, 동재, 서재, 삼일재, 전사청, 내삼문, 외삼문으로 구성되어졌다. 명륜당 앞마당 한쪽에는 424년 된 회화나무 한그루가 금호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조선통신사 열두 번 행렬을 모두 지켜본 나무다. 향교에서 조양각은 지척이다. 여기서부터 조선통신사 행렬은 대오를 정비하고 격식을 갖추어 진행했을 것이다. 청도기를 선두로 순시기, 영기, 나발, 나각, 태평소, 자바라, 동고, 북, 쟁으로 구성된 대취타가 웅장한 음악을 연주하며 조양각으로 향했다. 통신사 행렬은 평생을 두고 몇 번 볼 수 없는 진기한 구경이었다.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통신사 행렬을 환호하며 금호강변까지 따라갔을 것이다. 금호강 언덕바지 조양각에는 임금의 명을 받은 경상도관찰사가 통신사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국가차원의 전별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별연은 영천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인이 총동원되었고 성대하게 펼쳐졌다. 사행원은 전별연에 대한 답례로 조양각에서 내려다보이는 금호강변에서 구경꾼이 운집한 가운데 갖가지 마상재를 시연(試演)하였다. 여기까지가 조선통신사 영천 길이다. 마상재는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 막부도 극찬한 기예다. 일본 막부는 조선통신사를 위해 가는 곳마다 연회를 베풀었는데 그때마다 7첩 반상, 5첩 반상, 3첩 반상이 차례로 나왔고, 식사 상차림에는 3종류의 국과 15종류 찬품으로 구성해 지극 정성을 다했다. 일본이 부담한 조선통신사 1회 비용은 대략 100만 냥이다. 이는 막부의 1년 예산 77만 냥보다 많았다. 동원된 일본인이 33만 명이었고,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500억엔(円)이다. 일본은 조선통신사의 문·사·철·예(文史哲藝)라면 무조건(まるのみ) 받아들였고 일본열도를 열광하게 한 조선풍은 200여 년간 지속되었다. 411년 전 1,158km 한류 길에 올랐던 조선통신사, 그 중심 길은 조선의 문·사·철·예의 토대가 되어 온 영천이 있었다.    
 영천시는 2년마다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동경 한일 우정걷기대회가 열리는 일정에 맞춰 조선통신사 영천 길을 재현한다. 통신사행렬은 서울에서 도쿄까지 가게 되는 걷기팀과 합류해서 2019년 4월 15일에도 신녕중학교에서 출발해 조양각까지 옛길을 그대로 걷게 된다. 행사는 축하연, 출발식, 환영식, 전별연, 문화탐방으로 이루어진다.

   
 

 

 

김용진 작가

경북문인협회 회원, 디자인학 박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지역문화콘텐츠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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