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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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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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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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옥 경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위원장

[경북도민일보] 시집온지 30년이 된 지금도 6·13 지방선거에서는 아직도 전라도 사람 박미옥이란다.
나는 경상도 경산 압량 사람이다.
“광주, 광주! 다시보자. 내 어찌 너를 잊으랴! 내 떠난 뒤에 누가 너를 이렇게 감싸 주었나?” 무심코 틀었던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나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유행가만이 아니었다.
광주에서 살았던 세월만큼을 더 대구에서 살았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태어난 곳인데도,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그리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학 4학년 때, 대구에서 유학 온 복학생 형과 친분이 있었던 나는 ‘차 한 잔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심한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자와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리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거절하지 못한 걸 후회하며….
귀찮다는 표정을 애써 감췄지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알아채기엔 충분한 태도였으리라. 그 자리에 있었던 남편과 지극히 형식적인 몇 마디를 나눴다. 대구에 올 기회가 있으면 맛있는 것 사주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까마득히 잊은 어느 날, 친구들과 대구로 여행 갈 기회가 생겼다. 복학생 형은 내게 꼭 연락해 보라며 전화번호를 쥐어 주었다. 약속 장소에서, 기억도 없는 얼굴이 서로를 알아보는 데 조금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고 여러 가지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던 나를 알아보기는 더더욱 힘들었으리라. 그날로 광주와 대구(옛날 신라와 백제였으니)를 넘나들며 국경(지리산) 없는 사랑을 키워갔던 대단한 커플이었다.
결혼식에 축의금만 할 것 같던 친척들은 시댁이 대구라는 말에 해외여행이라도 가듯이 빠짐없이 참석해 주었다. 천상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성당에서 하늘과 땅이 축복해 주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또한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직행버스도 없고 일곱 시간이나 걸리니 친정 나들이란 큰 맘 먹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를 위해 88고속도로가 뚫리던 날, 그 기쁨은 일반 국민의 몇 배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영호남 친선 교류의 선두 주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친정엄마는 경상도 사위가 나타날 때마다 너무 다른 식성과 말투,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몇 마디 하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에 조금은 부담스러워했다. 30년 쯤 지난 지금은 열 마디 정도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 당시 광주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듣는 건, 내가 못하는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하는 상황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전라도와 경상도 말의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으니까.
경상도 아빠, 전라도 엄마, 충청도 아주머니 사이에서 자란 딸과 아들은 국적불명의 언어를 구사했다. 딸아이가 미국으로 간 지 5년이 넘어가는데 한국에서도 안 쓰던 사투리를 어색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구에서 왔다는 딸에게 경상도 사투리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몰래 연습을 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영어보다 사투리가 더 는 것 같은 우리 딸.
내가 태어난 광주를 넘고 넘어 25년간 못 만난 인연을 대구에서 만나, 남편 손잡고 평생 살게 될 줄 꿈엔들 알았을까. 부부의 인연은 그래서 하늘이 내리는가 보다. 비가 올 때면 먼 길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올 수 있는 여유를 함께 즐기며,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게 할 만큼 모든 걸 함께 해주는 남편. 내게 있어 더 이상의 바람은 과한 욕심일 뿐이다. 시집 올 때 가져온 25년과 둘이 만든 25년을 합한 세월만큼을 오래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외로움에 넘고 그리움에 넘고 수없이 넘었던 지리산에 단풍구경가자고 남편에게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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