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은 죽었다
  • 모용복기자
법(法)은 죽었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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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지난 2014년 9월. 법원 내부 게시판에 한 현직 판사의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무죄판결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글을 쓴 주인공은 다름아닌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였다. 그가 고위직 판사라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 부장판사는 “헌법이 판사와 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서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하라’고 하는 준엄한 책무를 양 어깨에 지운 것은 판사와 검사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지 아니한 채 묵묵히 정의실현(正義實現)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전제돼 있는 것이다”며 “국민들이 판사와 검사에게 신뢰(信賴)를 부여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들의 심연(深淵)에 있는 출세욕, 재물욕, 공명심 같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심(私心)을 떨쳐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판사는 국정원 댓글 무죄판결을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 꼬집고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고 개탄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문건이 모두 공개됐다.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410개 문건 가운데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196개 문건이다.
 문건을 살펴보면 양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 국회, 법무부, 변호사단체, 언론 등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는 변협엔 압력을 가했으며,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강온양면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또한 법원행정처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탄핵정국에서 대통령의 탄핵·하야 가능성을 가정한 대응전략까지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미공개 문건 중 ‘대통령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이란 문서에는 사법부가 ‘정치적 문제는 진보적으로, 경제·노동·대북 문제는 보수적 판결을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사법부가 재판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법의 원칙 아래서 공명정대하게 판결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법부는 이를 깡그리 내팽개치고 스스로 정치 판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판사들이 한 공작(工作)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다. 국정원 등의 공안당국도 이렇게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일을 꾸미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법의 탈을 쓴 정치 모리배와 무엇이 다른가.

 더욱 기가 막힐 일은 또 있다. 양승태 사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에도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2명은 1인당 위자료 1억 원씩을 지급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2년 후인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일본정부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자 할머니들은 법원에 정식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3년 세월이 흐르도록 단 한 차례의 재판도 열리지 않은 채 12명의 할머니 중 절반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2015년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한 문건에는 ‘소송을 기각하거나 각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송이 무효화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시효나 대일협정상 청구권 소멸로 기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놓았다. 상고법원 관철을 위해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을 놓고 박근혜정부와 거래한 명백한 정황이다. 이는 자국민의 인권을 최우선해야할 사법부의 책무를 저버린 행위로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스스로 헌법을 부정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포기한 몰염치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눈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은 안중(眼中)에 없는지, 그들의 귀에는 병마에 찌든 노구(老軀)를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수요일 길거리에 나와 진실과 싸우며 스러져가는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가 들리지 않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주장하는 상고법원 설치의 필요성을 백 번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인권을 저버리고 부당한 재판거래를 통해서는 달성될 수도, 또 달성돼서도 안될 일이다.
 양 대법원장 시절 재판개입 의혹을 받아온 고영한 대법관이 지난 1일 퇴임식에서 자신이 주심을 맡았던 KTX 여승무원 판결,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등에 대해 “향후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비판과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사법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서는 법관들이 재판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의 유무를 가리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 형량을 내리는 법관이 자신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 역사에 평가를 맡기겠다니 참으로 무책임하고 황당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그를 포함한 사법농단 주동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조만간 검찰이 시시비비를 가려 역사가 아닌 국민 앞에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의 말처럼 사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사법부의 권위는 누가 떨어뜨렸는가. 법원이 사법농단 재판거래와 관련해 법원과 전·현직 판사들에 대해 신청한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은 모조리 기각하고 카운터파트너로 지목된 외교부에 대한 영장만 발부한 ‘제식구 감싸기’ 행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들이 국민을 우습게 알고 국민의 인권을 짓밟으며 법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바람에 오늘날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법관 스스로 법치주의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그 때 대한민국의 법은 죽었다. 국민 아픔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줄 공평무사(公平無私)한 판결에 대한 고민은 않고 정치와 권력에 눈을 돌리는 사이 법은 국민으로부터 멀어져갔으며, 상식에 어긋난 판결과 ‘고무줄 형량(刑量)’이 난무해 국민정서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그들이 군자연(然)의 가면을 벗고 겸허의 법봉(法棒)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대한민국 법치주의 봄날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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