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해병 유족들의 빛나는 품격
  • 모용복기자
포항 해병 유족들의 빛나는 품격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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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10일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에서는 베트남전 영웅인 故 이인호 소령의 제52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추모행사에는 유가족과 사관생도, 장병 등이 참석해 영웅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기렸으며, 그의 살신성인 정신을 본받아 뛰어난 리더십과 희생정신을 갖춘 장병과 사관생도에게는 이인호상이 수여됐다. 해군사관학교는 이날 추모행사에 그치지 않고 다음달 30일까지 이인호제 특별전시도 마련할 계획이다. 해사가 매년 이 소령의 추모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그가 이 학교 졸업생이기 때문이다.
 故 이인호 소령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1957년 해군사관학교 11기로 임관한 후 해병사단 소대장, 수색 중대장 등을 두루 거친 다음 1965년 베트남전에 청룡부대 3대대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참전 이듬해 8월 청룡부대가 실시한 ‘해풍작전’에 정보장교로 투이호아 지역에서 작전 수행을 위해 동굴을 탐색하던 중 중대원들을 향해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을 가슴에 안고 전사했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부하대원들을 살리고 장렬히 산화한 것이다.
 정부는 이 소령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려 태극무궁훈장을 수여했으며, 미국의 존슨 대통령도 은성 무궁훈장은 수여했다. 모교인 해군사관학교는 교내에 이 소령의 동상을 세우고 이인호상을 제정했으며, 해마다 추모제를 개최해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후배들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이 소령은 대한민국 군인의 표상이자 해병 영웅으로서 길이 추앙받고 있다. 순국 이후 그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널리 만들어져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바람직한 군인상(像)으로 숭앙되고 있다.
 1949년 우리나라에 해병대가 창설된 이후 수많은 전투에서 해병대원들은 특유의 충성심과 용맹함으로 혁혁한 전과(戰果)를 세웠다.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 국민들의 뇌리 속에 ‘귀신 잡는 해병’ ‘무적 해병’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과 같은 수식어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산비리, 부대 내 성폭력, 기무사 계엄문건 등 각종 부조리한 논란이 터져나와 군(軍)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실추되고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일부 군인들의 일탈행위로 인해 대한민국 군대 전체가 매도를 당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故 이인호 소령과 같은 해병영웅의 기개와 희생정신은 더 이상 이 땅 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해병대의 기상(氣像)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귀신 잡는 해병’이 아니라 국민 마음을 사로잡은 해병 유족들 이야기가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로 숨진 해병 장병 유족들이 시민들이 낸 조의금 5000만원 전액을 해병대에 기부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달 23일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열린 마린온 헬기 순직 장병 합동영결식 때 모인 시민조의금 5000만원을 “해병대 장병들을 위해 써 달라”며 전액 기탁했다. 유족들은 “고인들의 희생이 더 안전한 해병대 항공기 확보와 강한 항공단 창설에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해병대에 당부했다.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사고에도 일방적으로 국가에 책임을 돌리고 보상이 적다며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요즘 세태에서 마린온 참사 유족들이 보여준 품격과 의연함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해병 유족들이라고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집안의 기둥인 남편을 잃고서 남들처럼 왜 슬프고 분하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사고원인이 의혹투성이인 마당에. 그러나 이들은 달랐다. 분노를 넘어 슬픔을 넘어 대한민국 군대를 위해 희생을 더 큰 가치로 승화시켰다. 순직 장병들과 유족들의 이러한 정신에서 50여 년 전 베트남 전쟁에서 실신성인의 의(義)를 실천하고 스러져간 故 이인호 소령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조금만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도 참지 못한다. 험담을 한다고 무참히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 심지어 가족 간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패륜(悖倫)범죄를 서슴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이나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책 속에나 나오는 미담이 된 지 오래다.
 모두가 자신의 잇속만을 생각하고 공공(公共)의 이익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국가의 발전과 사회 안녕은 국민의 건전한 공공의식이 확립될 때 가능한 일이다.
 해병대의 희생정신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대의(大義)를 위해 몸을 불사르는 해병정신은 지금과 같이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다.
 정부는 마린온 참사 해병 유족들의 숭고한 정신을 가벼이 흘려보내지 말고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고양시켜 마땅히 우리 사회의 본(本)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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