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각계 대표 망라
남북 ‘新남북연석회의’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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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新남북연석회의’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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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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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훈 아주대 통일연구소장

1945년 8월 해방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같은 해 12월 미국, 영국, 소련이 참석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의 통일문제가 논의되었고 그 후 남북의 정치·사회단체 대표들은 통일정부 수립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간 그리고 국내 단체들 간에도 합의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결국 2년간 유지됐던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었다. 
이처럼 남·북, 좌·우의 대립으로 인해 통일정부 수립의 꿈이 좌절되어 가던 즈음, 중도파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남북지도자 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여러 번의 우여곡절 끝에 1948년 4월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가 평양에서 열리게 됐다.
남북의 56개 정당·사회단체대표 695명이 참석하여 열흘이 넘게 진행되며 전체회의,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이 참석한 ‘4김(金)회의’ 등 다양한 형태의 회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남북연석회의의 합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통일운동의 한 지침을 제공했으며 한국민의 통일의지를 발산시킨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와 북한 정권의 수립에 이용만 당했다는 견해가 양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회의는 분단의 길목에서 남북의 정치인들이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나 통일정부 수립 방안을 논의하고 합의를 이루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올해는 남북연석회의가 개최된 지 70년 되는 해다. 70년 전 남과 북은 한반도 통일정부 수립을 이루기 위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으는 회의를 열었지만 결국 한반도는 분단됐고 남과 북은 실질적인 두 국가체제가 됐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아쉬운 마음에 만약 남북연석회의의 합의문이 제대로 이행되었으면 오늘 우리는 통일 코리아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
70년이 지난 오늘 新남북연석회의를 제안한다. 회의의 주제는 동일하다. 한반도의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그때는 일제가 물러난 뒤 아직 공식적인 정부가 존재하기 전이었지만 지금은 남과 북에서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하고 있다.
70년이 지난 오늘 북한은 실질적인 핵 보유국이 되었고 국제사회와 미국의 엄중한 제제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70년간 지속된 쇄국정책은 주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한은 전쟁의 폐허를 기적처럼 딛고 일어나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됐지만 미군의 도움이 없이는 북한의 핵위협을 감당할 수 없고 또 사회적으로도 많은 갈등과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 앞에 첨예하게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이나 70년 전이나 한반도가 당면한 문제는 엄중하며 이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지혜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그래도 혹자가 왜 이미 실패한 남북연석회의가 다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다음의 두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한반도의 운명은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결정한다는 결의와 다짐의 표현이다. 대한민국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국제적 이슈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국제사회는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 그 자체일지 몰라도 우리들에게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과정이다.
더 이상 주변국의 관료와 학자들의 ‘아니면 말고’식의 발언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 땅의 주인인 우리가 세운 원칙과 방식을 국제사회에 설득하는 길이 필요하다. 이는 현실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투정이 아니다. 각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신을 통치할 정치 형태를 결정할 권리는 유엔헌장에 담겨있는 등 국제법상의 하나의 확고한 원칙이 됐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실타래처럼 얽힌 남북관계와 통일의 길은 정부의 독점영역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국가주의 (Statism)’ 논의가 뜨겁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담론은 플라톤 시대로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담론이고 한 가지 답이 항상 옳을 수 없음은 상식에 해당한다. 하지만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국가주의적 접근은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체제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비정부간 교류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가지고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싹트고 있는 101가지 씨앗들 중 어느 것을 꽃피울지 결정하려는 행태는 국가주의의 가장 나쁜 사례 중 하나다. 이제는 남북교류를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남북연석회의는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야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통일을 향한 굵은 삼겹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70년 전 회담이 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차분히 분석하고 그 교훈을 우리 안에 삭혀야 한다. 중요한 교훈 하나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1948년 연석회의 발표문을 다시 읽으면 그 당시 상황에서 얼마나 실현 가능하다고 믿었을까 의심이 간다.
세상은 상징적 선언문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엄중한 한반도 상황은 더욱 그렇다. 이제 작은 합의를 하나씩 이루어 가면서 서로를 알고 믿어 가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2018년 新남북연석회의는 그 과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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