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공주, 그리고 황혼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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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공주, 그리고 황혼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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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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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경북도민일보 = 뉴스1] 고위 관료를 지내셨던 분이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친구분이 어느 날 아내에게서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터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통보를 받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보니 더 이상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이런 경우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던 게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화는 이해를 위한 과정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은 알 거야’라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을 통한 이해는 접어두시는 게 좋습니다. 대화를 해야 오해가 풀리고 앙금이 쌓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화조차 녹록하지 않습니다. 신호를 보내는 송신자와 신호를 받는 수신자는 자신의 생각으로 신호를 만들고 받기에 올바른 뜻이 전달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송신기와 수신기가 동일하면 문제 없지만 그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엇박자가 황혼이혼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부부간에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요? <달과 공주>라는 우화를 잠깐 빌려오겠습니다.
옛날 옛날에 왕과 왕비의 사랑을 받는 공주가 있었는데 어느 날 달을 따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왕은 공주를 설득하지 못하자 학자들을 불렀습니다. 학자들은 ‘달은 너무 멀리 있어서 딸 수가 없습니다. 설령 달까지 가더라도 달이 너무너무 커서 가져 올 수가 없습니다’라고 설득했습니다만 공주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마침내 광대까지 동원되었습니다. 광대는 공주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달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달은 얼마나 큽니까? 달은 무슨 색입니까?’라는 질문이었죠. 공주는 ‘달은 동그랗고, 손톱만하고, 황금색’이라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광대는 황금으로 만든 손톱만한 달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밤에 달이 뜨면 공주가 저 달은 대체 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물어보았습니다. “달을 따 왔는데 오늘 밤 달이 또 뜨면 어떡하죠?” 공주는 “이빨이 빠지면 나듯이 달은 하나 빼 와도 또 떠 올라. 호수에도 컵에도 달이 있는데 하나 가져 왔다고 안 떠오르겠어?”라고 답했습니다. 게임 끝입니다.
위의 우화를 보면 ‘달을 딴다’라는 말을 학자와 공주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광대는 공주가 말하는 ‘달을 딴다’라는 의미부터 파악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학자들의 설득 방식이 주로 남자들의 대화 스타일입니다.

남자들은 사실과 논리가 대화의 수단이며 대화의 목표는 문제해결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사실과 논리에 철저하게 집중합니다. 그래서 부부와 대화할 때 남자들이 답답해하며 ‘대체 문제가 무엇이냐? 지금부터 차근히 내가 묻는 말에 답을 해달라,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라고 다그치게 됩니다. 자신의 논리와 세계를 고집하다 보니 아내가 이야기를 끄집어 낸 배경과 이유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끔씩 여자의 사건 동기에는 남자가 잊어버린 저 옛날의 일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험 잘 치는 사람들은 문제 이면의 출제자 의도를 생각하는 것처럼, 아내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대화를 할 때는 학자의 방식에서 광대의 방식으로 바꾸어가야 합니다. 아내와 대화할 때는 특히 그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에게는 광대의 대화방식 비중이 높아져야 합니다. 젊을 때 아내는 남편의 논리를 참고 들어줄 인내와 포용이 있지만 나이 들어 호르몬이 급격히 줄어들 때는 이를 받아 줄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화방식이 ‘이해·논리·설득·문제해결’에서 ‘청취·공감’으로 옮겨 가야 합니다.
공감(sympathy)이란 감정(pathos)을 같이(sym)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어 파토스(pathos)는 열정, 고난과 같은 깊은 감정을 뜻하는데 슬픈 감정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쁜 감정이야 다른 사람이 같이 느껴주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기적같이 합격하면 그냥 혼자 집에 있어도 싱글벙글 즐겁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공감이란 결국 한 인간의 내면의 깊은 슬픔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내도 남편의 대화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자는 연장통을 들고 다니면서 고쳐주는 걸 좋아하는 문제해결형 사람들이어서 문제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공감을 바라는 것인지 어떤 문제를 풀어 보자는 것인지를 구분해서 신호를 주어야 합니다. 컴퓨터에 물어볼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요점을 명확하게 해서 직접적으로 알려줘야 합니다. 저희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 다시 만나자고 했더니 이모 애를 봐줘야 한다고 해서 딴 사람에게 맡기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핑계였습니다. 그때 아내는 저를 적극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남녀 대화방식의 차이 때문에 결혼까지 하게 된 셈이죠.
분석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초기 저작에서 언어의 논리적 사용으로 세상을 모두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후기 저작에서 언어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스라파라는 이탈리아 경제학자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이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맞혀 보라는데 비트겐슈타인은 답을 못했습니다. 경멸의 뜻을 나타내는 그 동작을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 그가 알 수가 없었던 거죠. 그리고, 아이들이 언어의 논리성을 전혀 배우지 않았는데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언어란 상황과 맥락을 배제하면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거죠. 약간 비약일 수는 있지만, <달과 공주> 우화에서 학자의 관점에서 광대의 관점으로 바꾼 셈입니다.
노후에는 자녀가 집에 없어서 부부가 서로의 오해를 억누르고 인내할 매개체가 없습니다. 신체적으로 약해지면서 신경질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신체가 약하면 정신도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성냥 옆에 검불이 가득 있는 형국입니다. 앞으로 아내에게는 <달과 공주>의 광대처럼 ‘공감력’을 키우면 좋습니다. 아내 역시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남편의 대화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반 걸음씩 서로의 방식에 가까워지면 황혼이혼 리스크도 비껴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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