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서 살려면 ‘아전인수’는 하지 마라
  • 모용복기자
농촌서 살려면 ‘아전인수’는 하지 마라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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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초행(初行)이 아니었건만 이번에도 또 길을 잘못 들었다. 2년 전 처음 왔을 때처럼. 아내의 잔소리가 귓전을 때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엔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목적지인 청옥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 새로 건설 중인 도로 공사로 인해 막혀 내비게이션이 인식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만 우회하는 길을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평소 워낙 길치인데다 더운 날씨에 조수석까지 짐을 가득 실은 차 안에서 2시간 이상을 꼬박 보냈으니 아내와 딸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우선 아내의 멀미와 머리 끝까지 올라온 화를 가라앉히고 딸애의 시장기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어귀에 큰 나무가 있는 마을에 차를 세웠다. 나이가 족히 수 백 년은 됨직한 웅장한 나무 두 그루가 펼쳐놓은 그늘 아래 정자에 걸쳐 앉으니 오장육부까지 청븻감이 스며든다. 아내도 만족감이 드는 지 조금만 더 쉬어가지고 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낮익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2년 전에 왔을 땐 물놀이를 하기 위에 이 동네 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갔던 기억이 났다. 삼거리에 편의점이 생긴 것 외에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람 발길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편의점은 다소 생뚱맞게 보였지만 그것이 어쩌면 시골의 정취를 더해주는 느낌을 들게 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
 2주 전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자연휴양림으로 가던 길에 잠시 들른 조용한 이 농촌마을에 최근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70대의 한 귀농인이 엽총을 난사해 공무원 두 명을 숨지게 하고 마을주민을 다치게 하는 살인극을 저질러 전 국민을 경악케 한 것이다.
 범행동기는 물 갈등 때문이었다. 몇몇 가구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간이상수도로 받아 함께 사용해오다 폭염으로 물이 줄어들자 다툼이 잦아졌다. 이 문제로 노인은 면사무소를 찾아가 수 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며 민원처리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이같이 흉포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에는 심한 가뭄이 들면 물이 부족해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었다. 물은 농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물 쟁탈전은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즉 ‘내 논에 물대기’라는 사자성어는 그로 인해 탄생됐으리라.

 농촌에서 나고 자란 필자도 어렸을 때 여름철이 되면 어른들이 논 물꼬를 지키느라 밤을 설치던 일을 기억한다. 오로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해 농사를 짓던 터라 한 방울의 물도 새나갈 새라 눈에 핏발이 섰다. 때문에 그로 인해 이웃끼리 심심찮게 다툼이 일어나고 심하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년 동안 원수 같이 지내는 경우도 본 적이 있었다.
 물 싸움은 서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쟁자를 뜻하는 영어의 라이벌(rival)은 본래 강(river)과 그 파생어인 ‘강가에 사는 사람들’(rivalis)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강물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물싸움을 벌였으면 강이 경쟁을 뜻하는 말이 됐는지 물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해 굳이 아전인수를 안 해도 되는 세상이 됐다. 농촌도 예전의 농촌이 아니다. 각종 관개시설의 발달로 아무리 가뭄이 든다 해도 물이 없어 농사를 못 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식수 또한 마찬가지다. 올 여름과 같은 폭염과 장기 가뭄으로 물 부족현상이 발생할 경우에도 국가와 지자체가 목이 말라 죽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다. 오랫동안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그 치열했던 물싸움을 이제 더 이상 벌이지 않는다.
 서부활극을 방불케 한 총기난사로 조용한 시골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귀농 4년차 70대 노인은 농촌을 아직 물싸움을 벌이던 70~80년대쯤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가 얼마나 식수난에 목이 말랐는지는 몰라도 만약 이웃과 소통하고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었다면 물싸움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이번과 같은 참혹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들어 귀농·귀촌인들이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대부분 우리 농촌이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소멸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농촌의 공동체적 성격을 무시하거나 마을 사람들에 동화되지 못하고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해 아전인수 행위를 한다면 귀농이 성공으로 귀결될 것이라 보장하기는 어렵다.
 그가 농촌에서 수확하는 건 농산물과 그로 인한 일정량의 물질일지 몰라도 행복을 거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촌에서 창농(創農)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이나 새롭게 인생 2막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전인수가 아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농촌에서 ‘제 논에 물 대기’만 하지 않으면 귀농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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