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조용한 곳이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곳곳에서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회나 시위를 하는 이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기적인 요구사항들이 대부분이다.
급격한 경제발전에 따른 생활수준과 지적수준은 높아졌지만 의식수준은 향상되지 않은 탓일까?
요즘은 걸핏하면 집단행동이나 촛불시위이다.
이래서는 사회여론을 모으고 집약시키기 힘들며 어느 정권이든 성공하기 어렵다.
무리를 이루어 공동체나 국가 전체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집단이기주의는 국가발전과 사회공동체에 너무나 많은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선조 15년, 병조판서에 임명된 율곡은 직감적으로 나라의 쇠약함이 극에 달했음을 깨닫고 선조에게 “10년이 못 가서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이니 미리 10만의 군사를 길러서 도성에 2만, 각 도에 1만을 두되 그들의 세금을 덜어주고 무예를 훈련시키며 6개월로 나누어 교대로 도성을 지키게 하였다가 변란이 있을 경우에는 10만 명을 합쳐 지킴으로써 위급한 때의 방비를 삼으소서”라고 직주하였다.
그러자 당시 당파싸움에 휩싸여 있던 조정에서는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였고, 동인 측의 도승지 유성룡조차도 “나라가 평화로운데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며 반대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치를 떨었던 조선은 무조건 외세를 배척하였고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이어져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개혁을 하지 못하고 36년간 일제치하에 놓이게 된다.
집단이나 다수가 꼭 개인이나 소수보다 옳은 것일까?
앞에서 보듯 다수의 집단이 개인이나 소수보다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학자인 칼 폴 라인홀드 니부어는 집단의 오류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집단이 개인보다 더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다. 그 이유는 집단 즉 무리는 개인보다 충동을 억제하기 어렵고 이성과 자기극복,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훨씬 결여된다. 또한 이기적 충동은 개별적으로 나타날 때보다는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 더욱 정당화되고 누적된다.
따라서 개인을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조정과 설득으로 바로 잡는 일은 가능하지만, 집단을 그렇게 하기는 불가능하며, 여기에는 오직 정치적 해결만 있을 뿐이다.”라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대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밑바닥에는 결국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욕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한 국가나 사회에서 진리와 자유를 해치는 가장 위험한 적은 바로 이기적 목적을 지닌 다수의 민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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