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에 나를 떠나지 않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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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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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연배가 비슷한 지인이 최근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들어 악기 하나쯤 연주하고 싶은 막연한 바람이 있지만 지인의 경우는 이유가 명확했습니다. 바이올린은 노후에 자신의 곁에 오래 있어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악기가 달아나거나 죽을 염려는 없으니까요. 말 된다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노후에 나를 떠나지 않을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셨나요? 가까이 있는 배우자가 먼저 떠오르겠죠.
 배우자는 내 곁에 항상 있어 주지 못합니다. 남자는 평균적으로 6년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아내라고 해서 항상 오래 있지는 못합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올해 100세(1920년생)로 여전히 정신과 몸이 건강하십니다. 장수라는 복을 타고 났지만 84세 때 상배(喪配)를 하신 외로움을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절절이 토로하고 있습니다. 70대 초반에 배우자를 먼저 보낸 제자를 80이 넘어 만나 보니, 마치 “한 발로 서 있는 쓸쓸함이 베여있었다”고 말합니다. ‘홀애비 환(鰥)’이라는 한자를 보십시오. 물고기가 살은 없고 뼈만 남은 앙상한 모양입니다. 글자에서 한 발로 서 있는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돈, 건강,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갑자기 나를 떠날 수 있습니다. 크게 아프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혹은 사업실패로 일순간 돈이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최근 베네수엘라는 경제위기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하루 아침에 ‘폭망’했습니다. 건강 이상도 예고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남자는 오랜 친구를 만나면 마약을 하는 사람이 마약을 보았을 때처럼 뇌가 기쁜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친구도 70을 넘기면 하나 둘 없어진다고 합니다.
 내가 몸과 머리로 익힌 무형의 자산은 어떨까요? 바이올린은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연주할 수 있고, 그림 역시 붓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모제스(Moses) 할머니는 67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0세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무형의 자산도 날 떠납니다. ‘스틸 앨리스(Still Alice)’ 영화가 이를 말해줍니다. 앨리스는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의사의 아내이자 언어학을 전공한 교수입니다. 어느 날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가족의 추억뿐 아니라 언어마저 잊어버린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언어 사용에서는 누구보다도 품위 있고 정확하였던 앨리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언어 감각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 즉 산 것은 멸하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진다고 했습니다. 젊을 때 펼쳤던 많은 것을 노후에는 거두어가는 듯 합니다. 정말 노후에 나를 떠나지 않을 것들은 없는 걸까요? 저는 지인에게 종교는 영원히 곁에 있지 않을까 물었습니다. 답하기를, 종교는 신이 그 자리에 영원히 있다고 해도 자신이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도인은 자신이 신에게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힌두교들의 연령대별 인생목표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인도인들은 아쉬라마(Ashrama)라는 힌두교 전통에서 말하는 인생의 4가지 단계를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의 수명을 100년으로 전제하여 25년씩 4가지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0~25세에 이르는 학생기로, 완성된 인생을 이루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삶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기간입니다. 두 번째는 26~50세에 이르는 가장으로서의 시기로, 가족, 일터, 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기간입니다. 세 번째는 51~75세 은퇴의 시기입니다. 세속적 문제는 다음 세대에게 넘기고 그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철학을 탐구하고 철학을 생활화하는 때입니다. 베가 경전을 열심히 공부합니다. 마지막 76~100세 사냐사(Sannyasa)의 시기로 세속적 욕망을 차단하고 수행에 전념하여 죽음을 맞이합니다. 탁발을 하며 목샤(해탈)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힌두교도들의 삶의 단계가 이렇게 구성된 것은 다음 생은 지금 생의 쌓인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삶의 원리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죠. 이처럼, 노후에 보이지 않는 삶의 원리를 나의 곁에 두고 추구해보면 삶도 좋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가치를 믿고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면에서 지식의 세계를 한 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위대한 수학자들은 가끔씩 증명되지 않은 가설을 내 놓습니다. 이 가설을 후대 수학자가 푸는데, 어떤 경우에는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페르마(P. Fermat)는 약 380년 전 책을 읽다가 옆에 식을 하나 적어 놓고 “증명방법을 발견했지만 여백이 좁아 쓸 수가 없다”라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를 ‘페르마의 문제’라고 부르는 데요, 360년 만인 1997년에 영국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Andrew Wiles)가 증명했습니다.
 푸앵카레(H. Poincare)는 1904년에 “어떤 하나의 밀폐된 3차원 공간에서 모든 폐곡선이 수축돼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원구(圓球)로 변형될 수 있다”는 가설을 내 놓았습니다. 이 문제는 약 100년 만에 러시아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Grigori Perelman)이 풀게 됩니다. 이들은 대체 뭘 믿고 틀렸을지도 모를 추측을 증명하는데 인생을 바쳤을까요? 위대한 선배 수학자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답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올바른 얘기를 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정신적 영역에서는 예수, 석가,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선각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말한 원리와 가치를 쉽사리 따르지 못합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해탈 역시 경험해본 적도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학자들이 페르마나 푸앵카레를 믿었듯이 우리도 정신적 천재들을 믿고 이들이 말한 가치를 따라 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정말 중요한 보이지 않는 가치들에 대한 공부와 성찰은 젊었을 때 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나이 아주 들어서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힌두교 전통은 인생의 세 번째 단계에서 이 공부를 하라고 하는 듯 합니다. 노후에 나를 떠나지 않을 것들의 목록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넣어 두면 어떨까 합니다. 나중에 자녀와 손자들에게 중요한 유산이 될 지 모를 일입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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