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의 추억-義犬 래리를 추모하며
  • 모용복기자
도그의 추억-義犬 래리를 추모하며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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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피는 속일 수 없는지 나를 닮아 딸도 개를 무척 좋아한다. 동네 강아지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꼭 아는 체를 하고 용모에 대한 평가를 내리곤 한다.
 얼마 전부터는 자주 강아지를 키우자고 보챈다. 그 때마다 나는 “아파트에서는 개를 키우기 어렵다”는 말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서 주인에게 목줄을 맡기고 재롱을 떠는 강아지들을 보면 내 변명이 무색해짐을 느낀다.
 내가 개를 키우지 않는 것은 생활환경이 적합하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이긴 하지만 유년시절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한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엔 집집마다 개 한 두 마리쯤은 다 있었다. 우리 집도 물론 그랬다.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해서 강아지 때부터 가족 이상으로 보살피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강아지부터 찾았으며, 혹시라도 집에 없으면 온 동네를 샅샅이 뒤져서는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1, 2년이 지나면 성체(成體)로 자라 들로 산으로 함께 다니며 신나게 뛰놀았으며, 친구이자 가장 아끼는 가족으로 무척 정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개가 보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개가 묶여 있던 자리에 목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어찌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부모님은 “개 삼 년 이상 키우면 미구(여우의 경상도 방언) 된다”며 그래서 개장수한테 팔았다고 했다. 나는 둘도 없는 친구를 잃은 마음에 밤늦도록 이불을 덮어쓰고 서럽게 울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집 강아지를 새 식구로 들인 까닭에 슬픔은 곧 잊혀졌고 강아지는 다시 친구가 됐다. 그리고 몇 년 후 개가 다 자라면 개장수의 오토바이 철망상자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갔다. 나는 상자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며 울부짖는 개의 처연한 울음과 애처러운 눈빛을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을 원망해보기도 했지만 어린 나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한 번은 우리 집 개가 나무에 걸리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어느 여름 날 이른 아침 “깨갱 깽”하는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 뛰쳐나가보니 마을 앞 시냇가에 있는 큰 밤나무에 우리 집 개가 몸이 축 늘어진 채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동네 어른들 손엔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나는 개고기를 입에 대 본 적이 없다. 고기가 귀한 시절이라 그 전에는 누구네 집에서 개고기를 푸짐하게 한 접시 갖고 오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곤 했다.
 내가 워낙 완강하게 저항했기에 그 사건 이후로는 더 이상 우리 집 개가 나무에 매달리는 일은 없었지만 개장수 오토바이에 실리는 일은 여전히 반복됐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부모님이 개에게 주는 밥과 내가 주는 먹이의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는 개에게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피해 다니고 부모님이 보란 듯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누나가 읍내 과수원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는데 그 전까지 봐왔던 개들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검정색 바탕에 군데군데 흰색이 섞인 군대와 경찰에서 훈련시킨다는 셰퍼드였다. 말로만 듣던.
 셰퍼드는 자라면서 귀가 쫑긋해지고 동네에 있던 ‘똥개(잡종견)’들보다 덩치도 절반 이상이나 컸다. 머리도 좋아서 공이나 나뭇가지 물고오기 놀이도 잘했다. 나는 셰퍼드와 함께 동네에 다닐 때마다 어깨가 으쓱했다. 친구이자 큰 자랑거리였다. 더군다나 이 개는 누나가 데려왔으며 또 특별한 개니까 부모님이 이번에는 팔지 않을 것이라 믿고 온 힘을 다해 보살피고 뛰놀며 정을 듬뿍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셰퍼드와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감쪽같이 개가 사라진 것이다. 부모님은 개를 팔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식구가 나서 온 종일 동네를 찾아 헤매다 허탕을 치고 돌아온 한밤 중 셰퍼드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쓰러졌다. 입에 흰 거품을 문 채. 그리고는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내 유년시절 셰퍼드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며칠 전 개에 대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경찰 수색견인 셰퍼드가 실종자 수색 도중 독사에게 발등을 물려 순직했다는 내용이었다. 개에게 순직이라는 거창한 말을 사용한 것이 한편으론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론 경찰관들의 마음 씀씀이가 흐뭇하게 다가왔다.
 래리라는 이름의 이 경찰견은 2012년 대구지방경찰청에 처음 배치된 이후 6년 여간 살인, 사고 등 전국 주요 사건현장과 실종자 수색현장에 배치돼 사건 해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경찰은 그동안 래리가 쌓은 많은 공을 생각해 청도에 있는 반려동물 전문장례식장에서 화장(火葬)을 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수목장(樹木葬)으로 장례식까지 치렀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이달 10일엔 래리의 사진과 공적을 기록한 추모동판을 만들어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입구에 다는 추모식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셰퍼드를 키워본 적이 있는 나는 안다. 그의 영특함과 충성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리고 인간의 사랑을 배반하지 않는 모든 개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그들의 품성이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들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 더 훌륭하다는 사실을.
 인간을 위해 일하다 순직한 래리를 추모하며 그의 공적에 예를 표하고 기리는 대구경찰청에도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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