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길 너머에 락 카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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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길 너머에 락 카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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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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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DC의‘LIVE’
▲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경북도민일보] -AC/DC lane
내가 머물던 호주 도클랜드의 아파트에서는 에티하드 스타디움이 한눈에 보였다. 개폐식 돔 경기장인 이곳에서 푸티(footie)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의 함성소리와 화려한 조명으로 온 동네가 들썩였다.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콘서트를 할 때마다 아파트의 베란다는 어디에도 없는 음악 감상실로 변했다. AC/DC를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단정하면서도 날카로운 기타연주는 밤하늘 높이 치솟아 베란다로 내리꽂혔다. AC/DC라니. 이 전류 같은 밴드의 중심을 차지하는 슬러시(/)는 번개 모양인 것이 특징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베란다에 모여 감전될 것만 같은 락 스피릿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맥주와 럼과 보드카가 비워지는 동안에도 노장의 투혼은 지칠 줄 몰랐다.
AC/DC라는 이름을 다시 접한 것은 멜버른의 밤거리를 정처 없이 떠돌 때였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고 머지않아 트램이 끊길 예정이었다. 일행은 좀처럼 집에 갈 마음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저 길 너머에 락 카페가 있어.”
나는 순식간에 그 말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락 카페란 연예인들의 입담이나 선배들의 무용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상상 속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내가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락은 매니아들의 전유물로 치부되었고, 스쿨밴드 출신인 나 역시도 음악 노선을 급선회하여 모자를 비딱하게 쓰고 갱스터 랩을 구사하고 있었다. 락 카페는 힙합 클럽으로 바뀌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한때나마 기타리스트를 꿈꿨던 과거의 기억은 좀처럼 시들지 않고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어쩌면 글을 쓰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결핍에서 충동된 것인지도 몰랐다. 일행 모두가 락 카페에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서둘러 길을 건넜다. 락 카페는 ‘AC/DC lane(AC/DC 거리)’에 있었다.

-가죽재킷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
골목은 좁고 어두웠다. 락 카페의 네온사인 아래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턱수염을 기른 아저씨, 스킨헤드, 빨간색 머리의 백인여자 등 그들 모두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가게 입구에는 덩치가 큰 매니저가 버티고 서 있었는데 터질 것 같은 티셔츠의 가슴팍에는 AC/DC라는 글자가 부풀어 있었다. 입장료는 25달러였고, 음료가 한 잔 제공되었다. 나는 좁은 복도를 지나 크고 무거운 쇠문을 열었다. 융단으로 된 암막 커튼을 걷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앉아 있었고, 각자의 시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곳은 그저 ‘락’을 뺀, 카페처럼 보였다. 옆 사람의 이야기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난처했다. 나는 서둘러 음료교환권을 맥주와 맞바꿨다. 팔뚝에 색색의 문신을 그려 넣은 바텐더가 찡긋 웃어 보이며 병뚜껑을 따주었다. 나는 일행이랑 떨어진 채 바에 기대어 맥주를 들이켰다. 그때였다. 발바닥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일었다. 스피커의 볼륨이 최대로 치솟으며 폭발적인 기타 연주가 흘러나왔다. AC/DC의 ‘Back in Black’이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나 환호성을 외쳤다. 몇몇은 벌써 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온몸을 뒤흔들어댔다. 그 중 한 아저씨가 내 눈에 들어왔다. 정장 차림인 그는 무대 위에서 양 팔을 벌린 채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기이한 행위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난해한 구석이 있었다. 어쩌면 그는 춤을 추는 중인지도 몰랐다. 단정하면서도 자유로운 제자리걸음 춤이라니. 몇몇 사람들이 그와 어울리기 위해 다가섰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내가 락 카페를 나설 때까지 단 1㎝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락이라는 제자리 안에서 세상을 향유하고 있었다.

-AC/DC 되기
말콤 영과 앵거스 영 형제를 주축으로 구성된 AC/DC는 ‘아이언맨’ 주제곡으로도 유명하지만 중독적인 기타리프와 도발적인 가사들로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락의 전설이다. 엘리트 스타일의 교복 상의와 반바지, 흰 양말과 스니커즈 그리고 특유의 발 박자를 타며 연주하는 앵거스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도 락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몸속 가득 타오르는 락의 기운을 고스란히 기타로 발산한다. 성(姓)처럼 젊은 그의 쇼맨십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반면 그의 형 말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동생을 백업한다. 앵거스가 무대 위를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게 말콤은 버팀이 되었다. 두 대의 기타가 저마다 나서길 원한다면 밸런스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다른 무엇도 아닌 조화이며, 락 역시 다를 것이 없다. 락이야말로 자유와 저항이 조화된 순수한 바위 덩어리니까.
말콤 영이 세상을 떠날 당시 자신의 모든 것인 AC/DC와 친동생인 앵거스 영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가 만들어낸 그 단정하고 단단한 기타 리프가 귓가에 맴도는 날이다. 이 멋진 밴드를 너무 늦게 만난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내게는 부틀렉 ‘Live’ LP와 호주에서의 추억이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면 턴테이블에 판을 올려두는 행위만으로도 AC/DC 거리의 락 카페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이 노장 밴드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양팔을 벌리고 제자리걸음을 선보인 한 사내처럼 눈을 감고 천천히 발을 디뎌본다. 한발 한발, 나아갈 곳은 저 하늘 너머다. 찌릿찌릿, 전류가 흐른다. AC/DC가 이제 귀 안에 있다. 나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기타리스트가 된다. AC/DC가 된다. 이제 나는 잠시 동안 음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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