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출판부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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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출판부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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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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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경북도민일보 = 뉴스1] 지식과 정보는 전파되어야 의미를 가진다. 혼자만 아는 것은 세상에 도움이 안된다. 각자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알아낸 것을 공유해서 상식이 형성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DNA가 이중 나선 모양이라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지식의 전파는 문자와 인쇄 매체가 담당한다. 지금은 디지털 화면이 그 역할을 많이 떠안았지만 전통적으로 논문과 책, 악보가 그 역할을 했다. 출판사다.
대학은 가장 많은 저자를 보유하고 있고 따라서 가장 많은 논문과 책이 나오는 곳이라 대학 자체가 출판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효율적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가 가장 오래된 대학 출판부다. 왕비를 줄줄이 죽이기로 유명했던 헨리 8세 때인 1534년 설립되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그 뒤를 따른다. 엘리자베스여왕 때인 1586년이다. 이 두 출판부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펴낸다.
옥스퍼드대 출판부 건물은 웬만한 단과대학 건물같다. 50개국에 지부를 둔 세계 최대의 대학 출판부다. 임직원 수가 6000명이다. 약 200종의 학술지도 펴낸다. 2016년 기준으로 45개국어 5100종의 도서를 출판했고 온라인 저널 다운로드 수가 2억회를 기록했다. 작년 매출은 우리 돈으로 약 1조3000억원이다. 우리나라 최대 출판사의 1년 외형이 400억원이라고 들은 것 같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지식의 전파를 통해 영어로 쓰인 지식을 국제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영제국은 군함과 대포만으로 탄생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식민지 시대에 대학 출판부가 학교 카탈로그나 행사자료를 인쇄하는 역할을 하다가 조금씩 학술적인 발간물을 펴냈다. 하버드에서는 1643년에 던스터 초대 총장이 부인으로부터 인쇄기를 넘겨받아 인쇄물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9세기 초에는 대학 이름을 붙인 인쇄물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출판부가 공식 설립된 것은 1913년이다. 연간 약 200종 이상의 책을 펴낸다.
하버드대 출판부 스스로가 홈페이지에서 대표 출판물로 들고 있는 것은 존 롤스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헬렌 벤들러의 ‘디킨슨’(Dickinson) 같은 책들이다. 최근에는 1911년에 시작된 로엡 클래시컬 라이브러리 디지털화를 완료했다. 이 라이브러리는 1933년에 로엡(James Loeb)이 타계하면서 하버드대 출판부에 기증했고 1934년부터 하버드대 출판부가 출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엡은 유서깊은 독일계 투자은행이자 JP모건의 라이벌이었던 쿤 로엡 페밀리의 일원이었는데 하버드 졸업생이다. 로엡 클래시컬 라이브러리는 500권 이상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고전을 영문번역과 함께 펴낸 것이다. 연간 약 10만 부 이상이 판매된다고 한다. 디지털화를 통해서 1800년이 넘은 저작들이 이제 모든 사람들의 책상 위나 전화기에서 간단히 읽힐 수 있게 되었다. 플라톤이 알면 감격할 것이다.
대학 출판부는 학술서적을 주로 출간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항상 어렵다. 또, 요즘은 각 대학 도서관들이 일반 도서 구입보다는 고가의 과학 저널을 구독해야 하는 사정 하에 있기 때문에 출판부의 학술도서는 판매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그 때문에 판매가 상대적으로 잘 되는 교과서 종류나 일반 서적도 함께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 해도 적자를 내는 것이 보통이어서 대학교가 결손을 메꾸어 준다. 하버드에는 출판부 자체를 위한 기금이 있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은 1961년으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까지 240종의 책이 학술원 등에서 우수도서로 지정된 만큼 무게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대 교수들을 저자로 우선 확보할 수 있는 프리미엄도 있었을 것이다.  같이 일을 많이 해 보아서 책을 내는 엄격하고 신중한 프로세스와 임직원들의 프로정신도 잘 안다.
최근 대학 지배구조는 직원, 학생, 외부인사, 동문들까지 참여하는 열린 형태로 변모해 가고 있다. 대학 출판부와 같은 전문적이고 어느 정도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는 조직부터 모든 곳을 교수가 관장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탈피하면 좋을 것이다.
영리 출판사는 강의와 연구가 본업인 교수들이 경영하기 보다는 베테랑 직원 출신이나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보면 좋겠다. 옥스퍼드도 펭귄그룹 CFO 출신을 영입해서 CEO를 맡기고 있고 하버드도 출판 전문가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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