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노인과 분노조절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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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노인과 분노조절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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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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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경북도민일보 = 뉴스1]  나이가 들면 감정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기 쉽습니다. 선친께서 예순이 넘으신 어느 날 30대였던 저에게 불쑥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지는구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즘 이 말이 실감납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세월의 길이만큼이나 깊어지나 봅니다.
 나이 들수록 분노의 감정도 곧 잘 표출합니다. 일본에서는 ‘폭주노인’이 사회문제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분노의 정도가 일상을 넘어서 심해지면 분노조절장애라고 합니다. 분노조절장애는 스트레스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가슴속에 응어리가 쌓여 있다 어떤 사건을 매개로 폭발하기에, 오랜 세월을 살수록 그 가능성이 커집니다. 스트레스 상황, 부정적인 사건들이 마치 전쟁터의 백전노장이 입은 상처처럼 마음속에 켜켜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폭주노인을 보면 부당함, 좌절감, 무력감이 깔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취급을 받느냐, 이제 나는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냐, 내가 자식에게 해준 게 얼마인데’라는 마음입니다.
 나이가 들면, 정도의 차이일 따름이지 누구나 이런 상황에 노출됩니다. 문제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상대방에 해를 가할 뿐 아니라 나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김형석 선생의 ‘백년을 살아 보니’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선배 교수분이 비원 앞 공터에서 남녀가 껴 안고 있길래 그러지 말라고 하고 길을 가는데, 돌아 보니 여전히 껴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뭐라 그러다 그만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그분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저희 선친은 별명이 영국신사일 정도이셨지만 가끔씩 흥분을 참지 못하십니다. 칠순이 넘었을 때 동사무소 직원이랑 이야기하다가 화가 치밀어 올라 뇌출혈로 그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2~3일 혼수 상태로 있다가 기적적으로 후유증 하나 없이 깨어 나셨습니다만,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노후에는 분노가 바로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수가 있습니다. 혹은 아내와 헤어지든지 자식과 돌이킬 수 없는 골이 생기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노후에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은 몇몇 특별한 사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되므로 분노에 잘 대처해야 합니다. 분노의 발생기제를 살펴 보면, 이는 마치 짚에 불이 붙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짚은 지금의 ‘나(ego)’이고, 스파크처럼 불꽃이 일어나서 에고에 불을 붙입니다. 상처를 많이 입은 에고는 짚이 초가 지붕처럼 수북해서 불꽃만 옮겨 붙으면 금방 활활 타오릅니다. 분노조절장애에 대응하려면 결국 불꽃이라는 외부환경과 에고의 관리 문제로 귀착됩니다. 불꽃을 없앨 수도 있고 아무리 불꽃이 많이 생겨도 에고라는 짚에 불이 붙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를 조절하는 세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봅니다.
 첫째, 불이라는 외부환경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자기와 별로 관련도 없는 정치에 목숨을 걸고 흥분합니다. 정치 뉴스 보고 혈압 오른다는 분들 많습니다. 요순시대 허유는 임금을 맡아 달라는 소리에 냇가에서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9개 주의 장관이라도 맡아 달라는 요청에 또 귀를 씻고 있는 허유를 보고 소 물을 먹이던 친구 소부가 한 말이 걸작입니다. “누가 당신더러 소문을 크게 내라 그랬소. 스스로 번거로움을 자처해놓고 귀를 씻는 쇼를 벌이지 마시오. 내 소의 입을 더럽히지 마시오”라고 말하고 강 상류로 갔다고 합니다. 정치 기사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남성입니다. 중원(中原)의 일에 너무 몰입하지 마시고 문학, 철학, 예술 등 아름다운 대상으로 관심을 분산해보십시오.
 둘째, 불과 짚 사이에 해자(垓子)를 만듭니다. 그러면 불이 일어났다가 짚에 옮겨 붙지 못해서 스스로 꺼지고 맙니다. 어떤 방법으로 해자를 만들 수 있을까요? 화가 나는 일이 발생했을 때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립니다. 혹은 화가 올라올 때 즉각 반응하지 않고 5분 동안은 ‘판단중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후설(E. Husserl)은 사물을 바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지식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고 자신의 의식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화가 올라올 때 그 상황에 몰입하여 바로 반응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 한 순간을 잘 못 참을 때 우리는 ‘마(魔)가 씌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애와 다투다 너무 화가 나서 PC를 창 밖으로 던진 남자도 있고 창밖으로 뛰어 내린 엄마도 있습니다. 심한 말을 내뱉어서 부부가 다시 돌아올 수 없게 사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 걸음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불이 번쩍하고 스파크가 일어날 때 꼭 해자를 만드십시오.
 셋째, 에고를 수련합니다. 후설이 말한 판단중지 후에 ‘자신의 의식으로 시선을 돌리는’ 환원의 방법입니다. 불가에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상을 향해 비추던 빛을 내 얼굴로 돌려 비추는 것을 말하는데,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의식으로 시선을 돌려 지금의 나를 긍정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과거부터 무의식에 쌓여 나를 왜곡하는 카르마(업)를 없애는 것입니다. 날뛰는 에고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남명(南冥) 조식 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달고 다니면서 에고(ego)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작은 분노도 자꾸 쌓이면 나도 모르게 폭주노인이 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처럼 나를 흥분케 할 대상을 멀리하고 해자를 만드는 것만 실천해도 극단의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상당한 내공이 요구되지만 꾸준히 실천해볼 만합니다. 남명 선생은 하늘을 두 쪽 내듯 떨어지는 벼락에도 꿈쩍 않는 지리산 같은 모습을 본받으려 했습니다. 노년의 성숙은 아집에서 벗어나 나를 객관화하는 힘에서 나오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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