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에서 러시아의 위풍당당함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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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에서 러시아의 위풍당당함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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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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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포의 러시아기행1
▲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경북도민일보] 24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인천공항에서 점심때쯤 출발했는데 8시간 후에 러시아 공항에 도착했다. 대한항공은 친절과 서비스가 최상이다. 기내에서 두 번이나 식사가 나왔다. 마치 돼지를 사육하는 것처럼 자고나면 밥을 먹여 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 네 편을 보았다. 순전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다. 필자는 스투어디스에게 땅콩을 좀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승무원은 친절하게도 여러 개를 갖다 주었다. 땅콩을 먹는데 갑자기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이 머리를 스치면서 실없는 사람처럼 혼자 빙그레 웃었다.
러시아와 우리나라는 시차가 6시간 차이가 난다. 모스크바 셰례메체보 공항을 내렸을 때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저녁이었다. 24년전 필자가 처음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 느낌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당시 구소련이 막 무너지던 때였다. 그때, 러시아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3시간 넘게 걸렸다. 길게 늘어선 러시아 출입국의 분위기는 권위적이었고 무척이나 엄격했다. 한명 한명을 세워 놓고 여권을 심사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은근히 두려움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외인이요 고립된 이방인일 뿐이었다. 출입국 직원이 뭐라고 말은 하는데 너무 긴장이 되어서 대략 난감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공항 안에는 군인들이 곳곳에서 총을 들고 있어서 분위기가 살벌했다.
24년이 지난 지금의 러시아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우선 공항의 분위기는 비교적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출입국을 심사하는데도 까다롭지도 않았고 심지어 필자를 심사하는 직원이 부드러운 웃음까지 안겨주었다. 자본주의 물결이 이곳 러시아를 삼키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모스크바는 일천오백만이 넘는 최대의 도시이자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며, 세계에서는 4번째로 큰 도시이다. 14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는 유럽쪽에 가까운 상트 페테르부르그 였고, 러시아혁명 이후 1918년 러시아의 수도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이 곳으로 옮겨왔고 1922년 소련의 탄생과 함께 소련의 수도가 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냉전 시대에는 세계 공산당의 본부이기도 하였던 모스크바는 러시아 모든 지역을 움직이는 중심 도시가 되었다. 모스크바 중심부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사원들이 많다. 높은 십자가의 종탑은 또한 오랜 세월동안 모스크바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적 구심점이 되어왔다.

숙소인 호텔로 가면서 즐비하게 늘어선 러시아 아파트와 길가에 자작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보면서 이곳이 러시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스크바는 부의 상징이요 권력의 상징이어서 모스크바에 산다는 것은 대체로 특권의식이 강하다.
러시아의 아파트는 비교적 오랜 된 아파트들이 많다. 주로 50, 60년대 지어진 낡은 아파트들이다. 러시아에서는 아파트를 마치 벽돌을 찍어 내듯이 한층, 한층 조립을 해서 만든다. 러시아에서는 임대료가 비싼 편이어서 임대료가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모스크바 시내에 자신의 아파트가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러시아는 땅이 넓어서 공원들이 많다. 공원은 연못이 있고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 있어 아주 낭만적이다. 대체로 공원주변은 거주지역여서 아파트와 주택들이 많다. 그리고 시내 중앙에는 사무실이나 일하는 직장들이 많아서 늘 사람들로 붐빈다.
모스크바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온화한 서풍의 영향을 받는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9월의 모스크바 날씨는 늦가을이다. 필자가 도착 했을 때는 약간 덥다는 느낌이 들 정도록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초여름날씨였다. 모스크바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오는 가장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그 러시아의 바람은 약간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넓은 들판 그리고 길가의 자작나무들이 늦가을의 몽환적인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작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실지로 자작나무의 껍질은 천년이 지나도 잘 썩지 않는다. 문득 자작나무를 보면 인생의 여백이 생각난다. 지치고 피곤한 인생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래서 러시아의 자작나무는 고귀하고 고결함을 넘어 위풍당당함을 느낀다. 문득 24년전에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그 까지 밤 열차를 타고 가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눈덮인 들판과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을 잊을 수 없다. 물감이 적당히 번진 수채화처럼 자작나무는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자작나무는 조용히 말을 걸어 왔다. 4천킬로가 넘게 멀리 떨어진 동양의 한 나그네를 기다렸다고…
어느 듯 호텔 숙소에 도착했다. 긴 여정으로 체력이 고갈되었나보다. 눈꺼풀이 무겁다. 아침 일찍 포항에서 인천공항까지 열차로 바쁘게 달려왔고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까지 8시간의 긴 비행은 여행의 첫날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는데 눕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아늑한 그리움이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인생은 또 하나의 그리움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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